인과

                           유계영

개기월식;
양팔을 벌리고 
달의 테두리를 따라 걸었다
(···)
마음에도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와
겁에 질려 모두 먹어치웠다

성실한 마음;
층층계 모서리에 거미가 줄을 쳤다
빈 거미줄에 마른 나뭇잎이 걸린다
거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푸른 불꽃;
긴 혀를 빼물고 눈부시게 잔다

의자가 놓인 위치는 
의자의 기분을 설명한다;

사물은 입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호감을 샀지만
인간은 사물을 사랑하므로
사물의 입을 찾아주었다

 

 여러 꽃이 피어나고 초록 잎들이 자라는 사월입니다. 저는 사월이면 생각나는 또 다른 시가 있는데요, T.S 엘리엇의 ‘황무지’입니다. 이번 달의 연재는 유계영 시인의 ‘인과’와 더불어 ‘황무지’도 언급하려 합니다. 

  ‘황무지’의 첫 번째 문구는 매우 유명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데요, 왜 사월이 가장 잔인하다고 했을까요?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신앙 부재와 정신적인 황폐를 표현했는데요. 이처럼 전쟁으로 피폐해진 황무지 같은 삶이라도 또다시 계절은 겨울을 지나 사월로 돌아옵니다. 사월이 되면 여러 꽃과 초록잎들이 새롭게 피어나지요. 여전히 마음은 황폐한데도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고 삶에는 답이 없는데 자꾸만 변하고 다시 돌아오는 봄의 시간이 무섭다고 말하는 엘리엇의 장시입니다. 
  이제 유계영 시인의 ‘인과’로 넘어가 봅시다. 처음에 저는 이 시를 읽고 조금 난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읽은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셨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시선을 조금 달리해서 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시 속의 단어를 그대로 이해하는 대신, 여러분의 사유가 들어가 시인이 나타내지 않은 단어도 상상해보는 시선입니다. 그렇게 시를 읽다 보면 이 시를 지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엘리엇의 ‘황무지’와 유계영의 ‘인과’에서는 제가 생각한 나름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삶에는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에 답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답을 위해서만 사는 삶이라면 세상은 너무 단순할 것입니다. 삶에는 영원한 진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삶에는 여러 시선이 있습니다. 오래된 시선, 틀에 박힌 시선, 새로운 시선 등 저도 여러분도 오래된 시선이나 틀에 박힌 시선보다는 새롭고 신선한 시선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각들은 우리의 삶을 개척하며 다양하게 살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이것을 문학에 적용해도 같습니다. 이제는 시를 읽을 때, 단어와 문장의 형식적인 구조 그리고 시인의 획일화된 의도만을 파악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마음과 사유로 읽는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시인은 ‘인과’라는 시에서 각각의 독자들이 지닌 미묘하고도 다채로운 감정에 집중해서 시를 감상해 보라고 합니다. ‘겁에 질려’ 일어난 개기월식과 움직이지 않는 거미에게 느껴지는 성실한 마음, 입이 없는 의자에게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시를 읽는 우리로서는 난해하지만 유계영 시인에게는 이것이 그토록 말하고자 했던 바일지도 모릅니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의 매력을 찾아서 여러 시선을 건너 온 여러 삶. 겨울을 지나 봄을 건너 온 끊임없는 계절의 흐름에 시를 향한 저마다의 마음을 보냅니다.

박시현 (국어국문학·4) @garnetstar___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