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이별이 두려운 당신에게

  시절인연을 아시나요
  내 인생 첫 번째 이별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매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사람과 헤어짐을 거듭해가고 있지만, 만남은 늘 서툴고 이별은 늘 가슴 아프다.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가만히 사색하고 있을 때면, 나의 옷깃을 스쳐 간 수많은 인연이 떠오른다. 사소한 계기로 평생 우정을 다짐했다가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진 친구부터,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줬지만 이별의 아픔 역시 안겨준 사람,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셨던 조부모님까지, 크고 작은 이별들은 늘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경험한 수많은 이별 중에서도 이따금 내 머릿속을 헤집는 건 내가 ‘고모’라고 부르던 사람과의 이별이다. 나는 ‘고모’라고 불렀지만, 사회적으로는 ‘베이비시터’라고 불리는 일을 했던 그분은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5살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던 해까지 나를 돌봐주셨다.
  어찌 보면 ‘돈’으로 얽힌 관계였지만, 고모는 나를 정말 사랑해주셨다. 생일마다 손편지와 선물을 줬고, 시간이 날 때면 꼭 자전거 뒤에 나를 태워 도서관에 데려가 책을 권해주셨다. 또,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늘 내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고, 아침마다 시사 뉴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렇게 고모는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엄마 아빠는 더는 고모가 집에 오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해고’라고 해야 할까, 가족이라고 여겼던 그 관계를 해고라는 두 글자로 정리하기엔 조금 우습지만 아마 그게 맞을 거다. 그렇게, 고모와 나는 이별했다. 
  처음에는 고모도 울고 나도 울었다. 이렇게 헤어져도 매일 연락하자고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입시’라는 무거운 두 글자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핑계였다. 자주 볼 기회가 없어지며 고모는 점점 내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이후 나는 ‘가족 같은 관계인데도 이리 쉽게 잊히는 마당에, 다른 감정은 얼마나 더 가벼울까’ 하며 한동안 만남에 대한 회의감과 이별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도대체 사랑은 왜 해야 하는 걸까?
  여느 때와 같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 불현듯 책을 고르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시사 뉴스에 관심이 많은 현재의 나에게는 이미 떠나갔다고 생각한 고모의 모습이 어렴풋이 있었다. 농담을 좋아했던 친구의 모습, 독립심이 있던 그 사람의 모습, 늘 글을 쓰고 있었던 할아버지까지, 떠난 이들이 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린 앞으로도 수많은 인연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워할 필요까진 없다. 잠시 옷깃을 스친 인연조차도 우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
  오늘도, 난 나와 이별할 수많은 인연을 기대해본다.

이다연 (국어교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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