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예능 현재 방영 중인 상담 예능 프로그램이다. 인포/ 김은지 기자

 TV 속 누군가가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아니, 이제는 익숙하다. KBS의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선두로 매해 한두 개씩 시작된 ‘상담 예능’은 폭발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한 인기를 얻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고민 해결에 대한 시청자의 요구가 강화되면서 상담 예능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고, 상담 예능은 이른바 방송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지상파·종편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상담 예능을 시작하며 방송가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상담 포맷을 이끌어 왔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틀을 깨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고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상담 예능이 다양해진 만큼 상담 주제와 시청 타깃도 세분화됐다. 자녀와의 멀어진 관계가 고민인 부모부터 과거 따돌림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청년까지, 상담이 필요한 이들은 각 상담 예능의 특성에 맞게 출연하며 조언을 구하고 있다. 

주요 상담 예능 시청률 추이 시청률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인포/ 김은지 기자

  상담 예능 프로그램    

  # 부모는 처음이라 
  현 상담 예능 중 4%대의 시청률로 가장 흥행하고 있는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는 오은영 정신의학박사와 육아 경험이 있는 패널들이 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에게 육아법을 전수하는 상담 예능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부모의 관점에서 진행되던 기존 육아 상담 예능과는 달리 철저히 자녀 시점에서 문제를 분석하며 상담을 진행해 상담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육아’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2006년 방영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도 공통분모를 갖지만 두 프로그램은 출연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해당작이 아이들을 ‘교무실의 무법자 ○○’, ‘최강 폭군 △△’ 등으로 부르며 문제 행동만을 부각했다면, ‘금쪽같은 내 새끼’는 ‘아빠의 폭력을 생생히 기억하는 금쪽이’, ‘게임 계정 사건에 휘말린 금쪽이’ 등 모든 아이의 이름을 ‘금쪽이’로 통일해 아이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아이가 처한 상황 자체에 초점을 둔다. 또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의 유년 시절에 대한 상담도 진행하면서 문제의 기저에 깔린 원인을 해결한다.  
  # ‘아프니까 청춘’은 옛말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년들을 가볍게 위로하는 말로 자주 쓰이곤 했지만, 청년들의 아픔은 더 이상 가볍지 않다. SBS는 지난 2월 오 박사를 필두로 ‘써클 하우스’라는 상담 예능을 런칭했다. ‘써클 하우스’는 ‘청춘 상담 프로젝트’라는 기획 의도에 맞게 요즘 청년들이 겪는 10가지 고민 키워드를 분석한 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청년들을 섭외해 함께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상담 예능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은 쓸쓸이, 철벽이, 거울이로 등장해 학창 시절의 왕따 트라우마,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자기혐오 등 각자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 바른 연애 길잡이 
  ‘연애의 참견’은 KBS Joy에서 방영 중인 상담 예능으로, 연애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 예능 프로그램이다. ‘연애의 참견’은 일반적인 연애 상담을 진행하면서도 때로는 법률 자문과 함께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을 겪는 시청자들의 고민을 해결하며 전문가 패널 부재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티저 부정적 감정이 나열돼 있다. 사진/ 방송화면 캡처

  상담 예능의 흥행 배경 

   사회적 고립의 심화 
  상담 예능의 수요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사회적 고립’이 존재한다. 사회적 고립은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면서 재조명됐다. 통계청의 ‘2021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의 사회적 고립도는 2019년에 비해 7% 가까이 증가한 34.1%를 기록했다. ▲2015년 (30%) ▲2017년 (28.1%) ▲2019년 (27.7%) 등 코로나19 이전 지표를 참고했을 때 이는 큰 증가폭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 및 단절의 심화로 2020년대인 신뢰도 지수는 코로나19 이전 지표인 65%에 비해 15.9% 감소한 50.3%를 기록했다.    
  또한,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21’에 따르면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 타인과의 접촉 빈도 등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물리적 분리의 정도를 뜻하는 객관적 고립의 상태도 악화됐다.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가 심화되자 이를 간접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상담 예능의 수요가 자연스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상담 인프라의 한계 
  ‘상담 인프라의 한계’ 또한 상담 예능 흥행의 배경이 된다. 지난 4일,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 사업부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미크론 유행 이전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접수되는 주간 상담 건수가 200건 정도였는데 4월 첫째 주에는 상담 건수가 800건에 달했다”며 “심리방역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센터의 직원은 29명으로 기획관리, 트라우마 연구 등 5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인력이 코로나19 정신건강 사업에 투입돼 상담을 진행하는 상황이다. 이에 심 사업부장은 “코로나19로 인력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공공기관 특성상 추가로 인력을 늘리는 건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담 인프라 공급의 한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심리 상담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국가 지원 부족으로 상담 인프라 공급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상담 인프라의 한계는 이외에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정부 및 지자체가 주관하는 상담 지원 정책은 주로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어 해당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담 및 치료비 지원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 주관의 자살 예방 상담 센터 또한 근무 인원이 낮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어 상담 전화가 몰리는 밤 11시~새벽 1시에는 응대 실패율이 70%에 달해 문제가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산과 대면 상담에 대한 심리적 부담 등으로 비대면 상담에 대한 필요성 또한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인프라 마련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홍은주 을지대 아동학부 교수가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가족센터 비대면 상담 운영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03개소 가족센터 근로자 31.4%가 ‘소속 기관에서 비대면 가족 상담 제도를 운영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미운영 이유로는 기관의 인프라 부족이 31.4%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가성비 좋은 상담 예능 
  한편, 상담 예능의 증가 요인은 방송사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금쪽 가족’ 등 다양한 상담 예능을  런칭한 채널A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상담 예능에 대해 “일단 세트가 지어지면 나머지 제작비는 대부분 인건비”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상담 예능은 대부분 3~5명의 출연진과 함께 스튜디오 녹화로 진행되며, 주로 방송국 내 세트장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SBS의 ‘런닝맨’이나 KBS의 ‘1박 2일’과 같은 야외 예능과 비교하면 장소 섭외비 등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이미 수차례 안정성이 입증된 포맷이기에 패널만 조화롭게 구성한다면 시청률 부담 없이 런칭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담 예능 공급에 도움이 된다.   

  상담 예능의 가치 

  ‘금쪽같은 내 새끼’를 기획한 채널A 김승훈 PD는 지난 3월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출연진이 방송에서 비밀을 털어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말을 했더니 편해졌다’고 느끼게 하는 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해당 상담 예능을 시청한 우리 학교 A 학우는 “생각해보니 아무에게도 내 진짜 고민을 말한 적 없었다”며 “방송 시청 후 고민을 정리해보며 진짜 내 고민이 무엇인지 알게 되니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담 예능은 출연진과 시청자들이 가진 근심, 걱정을 덜어낸다는 점에서 선한 예능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상담 예능은 상담 인프라의 공백을 채우는 역할 또한 톡톡히 해낸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근심스러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맘 편히 고민을 털어놓을 상황도 안 될뿐더러 주변에 고민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상담 환경이나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고, 애써 상담을 신청해도 신청자가 너무 많은 탓에 뒤로 밀린 사람, 상담 전화 자체에 실패한 사람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담 예능은 대체재를 자처하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곤 한다. 평생 자신을 깎아내리며 살아온 사람부터 가족에게 소외감을 느끼며 사람, 가정 폭력 피해 이후 사회로부터 도망친 사람까지. 각각의 사람들은 상담 예능에 출연해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 그리고 이들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위로 받는 이들을 보며 간접적인 위로를 느낀다.
  자신과 타인의 심리적 간극이 넓어지고 사회가 더는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상담 예능은 같은 고민을 하는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게 하기에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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