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남들과 달라 고민인 당신에게

  때를 민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은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집에 오는 것. 그것은 나만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목욕을 한다는 것 자체도 좋았지만, 내가 목욕탕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거동이 힘든 노인부터, 남편 욕과 자식 자랑을 하며 사우나에서 땀을 빼는 아주머니,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태초의 인간의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다. 탕이나 사우나에 앉아 이런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 중에도 가장 볼만했던 건, 때를 밀려고 하는 아주머니와 싫다고 도망가는 아이의 실랑이였다. “이건 밀어야 해. 때는 더러운 거야”, “싫어, 아파”, “아니야 밀어야 해”. 원래 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다고, 그들의 팽팽한 승부는 참으로도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굳이 때를 왜 밀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를 더럽게 여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때는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성분이라고 한다. 이 때를 더럽게 여겨 과도하게 없애려 한다면 오히려 각종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를 더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때를 벗겨내 무(無)의 상태로 만들려 한다. 또, 그 무의 상태를 선(善)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친구는 말이 많은 게 단점이야’, ‘이 친구는 너무 나대’, ‘이 친구는 이것저것 벌여 놓기만 하고, 끝마치질 못해’, ‘이 친구는 너무 튄다’. 이런 식으로 지적하며, 자신의 눈에는 ‘허물’로 보이는 것을 벗겨 내길 요구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말을 잘하는 장점이 있고, 그 친구는 분위기를 잘 띄워주고, 그 친구는 도전정신이 투철하고, 그 친구는 개성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허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들이, 사실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일부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도하게 그 사람의 일부분을 벗겨 내려 하면 선의 상태가 아닌 말 그대로 무의 상태에 놓인, 무색무취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말한다. ‘때를 벗겨 내, 깨끗한 인간이 되자!’ 과연, 그들이 요구하는 깨끗한 인간이 되면, 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변모된 인간은, 한 인간으로서의 오롯한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과도하게 타인의 허물을 벗겨 내려 하기보단, 그들의 고유한 때를 인정해주면 어떨까. 
  그때 그 아이는 때수건을 손에 쥔 아주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기를, 부디 모두들 자신만의 변화무쌍한 때를 지켜가며 성장해 나가기를 간곡히 빌어 본다. 우리 모두 자신의 때를 지키며 살아가자.
  그 어떤 무력이 닥쳐오더라도.

 

이다연 (국어교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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