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나빠서 너를 아프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너 같은 사람이 되기 싫다면서 너보다 나쁜 사람이 돼버린 나는 이제 심한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렇게 뱉어 놓은 말들이 마음을 꾹꾹 눌러도 참을 수 있다. 아니,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
  너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제일이라는 말을 꼭 앞에 붙였다. 그런 건 끔찍한 일이 아니었다. 더 끔찍한 건 나였다.
  나이테도 아닌 것으로 손목에 상처를 주며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내게 달려오던 너. 유언 따위를 입에 달고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말하는 내 앞에서 나보다 더 크게 울던 너. 잠이 들지 못하는 나를 위해 수화기 반대편에서 꾸벅꾸벅 기다려주던 너. 그걸 다 버린 내가 가장 끔찍하다. 그래서 난 아무렇지 않았다. 남겨진 널 두고 모진 말로 돌아설 때.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언젠가 너는 혼자서도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한테 기대는 버릇은 좋지 않아. 널 해칠 뿐이야. 너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 마음에도 손가락질했다. 그 모든 것이 돌아와서 너를 망칠 거라는 것을 미리 안 사람처럼 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너는 그렇게 됐다. 내가 너를 망치고, 막말을 하고, 나를 망가뜨린 게 너니 너도 그렇게 되라고 악담을 퍼부을 때, 너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제 나는 그런 걸 물어볼 수 없어 궁금한 것만 늘어난 사람이 됐다. 못됐고 나쁘고 호기심만 많은 볼품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나는 이제 너를 잃어도 아무렇지 않다. 어차피 ‘너’는 너무 많으니 잃을 때마다 마음을 허물면 된다. 마음은 크기 같은 게 없어서 아무리 허물어도 닳지 않을 것만 같다. 누구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 잘 된 일이라 했고, 누구는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따졌지만 나는 귀찮아서 귀를 막았다.
 널 처음 보낼 때는 너무 아팠지. 아파서 제발 가지 말라고 엉엉 울었다. 마음이 다 없어진 것 같으니 나도 없어지겠다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다. 막상 네가 떠나도 마음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 많은 널 떠나보냈다. 첫 번째 너네가 떠난 후로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고 도대체 남은 게 뭐가 있나. 뭉텅뭉텅 잘려 나간 마음만 남았고 너는 또 갔다. 새로운 날이라고. 좋은 날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사이로 너는 가버렸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눈에 좋지 않아 나는 눈을 자주 비벼댔다. 흐려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흐리게 보여 네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보이면 난 미안해질 테고 미안하면 나는 사과를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더 나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다. 
  눈을 누르면 눈물도 흐르고 말을 하면 목소리가 흔들렸는데 나는 너무 나빴다. 너를 버리고 등을 돌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 그랬다. 더 사랑할 것도 없고 사랑할 마음도 없는 세상에서 네가 다시 걸어 들어온다면 나는 더 나쁜 사람이 될 거다.

안미진 (국어국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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