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을 용기

  일상으로의 회귀, 요즘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했던 자리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형체가 있어 만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비슷하다. 한평생을 같이 있어 줄 것 같았던 친구와 인연을 마무리하게 되고, 가볍게 시작했던 인연이 생각보다 내게 오래 남아 있다. 내가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곁에 남아 준 사람이 있고, 내가 정성을 다해도 나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 적어도 내게는 ‘떠나도 되는 인연’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누군가를 잃고 나면 한참을 힘들어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 거 같다. 낯을 심하게 가려서 처음에 친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친해지고 나면 내 모든 것을 허용해 주는 사람. 가끔 이런 나 자신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너무 퍼주면 호구 된다’, ‘그러면 너만 불쌍해진다’.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나는 호구가 된다는 걸 몰라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호구가 돼도 좋은 것이다.
  가끔은 이런 성격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상상 이상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누군가에게 정을 줄 때 망설이는 것은 불쌍하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지금 내 옆을 붙잡고 있어 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서글프다.
  반복되는 상처에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정말 정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것이 나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일까, 이를 통해 내가 얻는 것이 상처뿐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보단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유명한 심리이론이 있다. 즉 나를 떠나간 인연이 남긴 상처에 집중하느라 지금 내 옆에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잊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줄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 그만이다.
  물론 상처는 크게 남는다. 한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이다. 아프면 아플수록 내 노력은 증명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이다. 충분히 아파하고,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회복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예전과 달라질 것이다. 사람을 믿기 두려워질 수도 있고,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분명 배우는 점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굳게 붙잡아 본다. 하나의 눈짓, 하나의 손짓에 의지해 엮어나간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가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유할 수 없다. 낮은 확률의 우연이 겹쳐져 높은 확률의 필연이 돼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신비롭지 않은가.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아프지만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멈추지 않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내게 모질게 대했던 사람을 용서하길 바란다.

권사랑 (정보통계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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