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는 과일을 무척 좋아하신다. 특별히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과일을 좋아하신다. 형들이나 누나가 과일을 사올 때면, 어머니는 늘 “뭐, 이런 걸 다 사오냐?” 하시지만 말씀과는 다르게 미소로 마음을 표현하신다. 그렇지만 나처럼 먹고 싶을 때 아무때나 드시는 법이 없다. 언제나 식구들이 모여 있을 때에만 과일을 접시에 담아오신다. 그리곤 항상 맛 없는 것을 골라 드시며 “난 이가 약햐서 딱딱한 것 잘 못먹겠더라” 하시며 썩은 과일을 드신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는 그냥 어머니의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그래, 어머니는 이가 안 좋으셔서 단단한 것을 드시기가 불편하실 거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를 조금 머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철’이라는 것이 조금씩 들면서 어머니가 맛있는 과일을 못 드시는 이유가 이때문이 아니라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것을 먹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은 썩은 과일도 흔쾌히 드신다는 것을 안다. 이제부터는 어머니가 드시기 전에 내가 먼저 썩은 과일을 먹어야겠다.

박 한 석(건축공 · 3)

과일의 교훈
 가을은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한다. 썩은 과일조차 내게 교훈으로 마음의 양식이 되어주었다. 나에게 있는 ‘능동성’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과일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썩는 것에 대해 스스로 어떤 대책을 세우거나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실하고 탐스런 열매일수록 벌레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고, 자신의 열매를 조금의 저항도 없이 내주어야 하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언제나 나의 의지대로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벌레와 같은 나를 노리는 훼방꾼들이 있을지언정, 나의 의지 ·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태가지는 노력하고 스스로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알고 보면 내게 주어진 축복만도 지극히 많을텐데, 난 그것들을 모두 당연한 것으로 제쳐두고 언제나 불평거리에 대해서만 촉수를 세우고 살아왔구나 싶은 것이 부끄럽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많은 순간들을 안타깝게 놓쳐버린 것이다. 앞으론 내게 주어진 ‘능동’이란 축복을 십분 발휘해서, 나의 삶 자체를 충실한 열매로 만드는 것은 물론 외부로부터의 방어대책까지 플러스해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주위에까지 그윽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과일의 교훈’ 덕분에!

 임미숙(컴퓨터과학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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