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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 승인 2020.09.02 14:01|(1161호)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이번에 소개할 시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입니다.
  시를 살펴보면,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화자는 매일 슬픈 것을 보고, 그 슬픈 것을 잊고, 지워버리기 위해 얼굴을 씻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말하는 슬픈 것이 무엇일까요? 시를 조금 더 읽어 봅시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이 부분에서는 차량의 거울에 쓰여 있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고, 그 가까운 거리에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는 이 문장은 화자와 타자와의 관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지만, 아직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 아직 확실한 관계가 확립되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죠. 그리고 화자는 이 대상을 오래오래 믿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때 사물은 제 목소리를 내듯 흑백을 뒤집어썼다.” 이 문장에서는 시인만의 독특한 문체를 볼 수 있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써내려가는 방식입니다. 꽃이 있던 자리에 녹색의 잎들이 피어났고, 그리고 잎이 사라지면 빈 가지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대상과의 시간이 흐름에 따른 관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죽으면 사물도 죽는다. 내가 끝나면 사물도 끝난다. 다시 멀어지는 것은 꽃인가 나인가. 다시 다가오는 것은 나인가 바람인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영영 아프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영 슬프게 되었다.”에선 관계의 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자는 사람을 결국 믿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 나라는 사람도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에 화자 자신도 믿지 못한다는 슬픈 일이 일어나죠. 시에서 말하는 슬픈 것과 슬픈 일, 슬픔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결코 그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조금 쓸쓸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을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슬픔을 강조한 이유는, 우리는 우리를 모르기 때문이죠. 완벽하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모든 사람에겐 있습니다. 여러분도 인간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가만히, 고요히 놔두는 것이 어떨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니까요.

박시현(국어국문·2)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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