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문학의 가능성

 최근 들어 우리는 정보화사회와 컴퓨터 혁명이 마련해준 새로운 소통공간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가 실제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과 동일한 의사체험(擬似體險)을 가능하게 해 주는, ‘통신공간’ 또는 ‘가상공간’이라고도 불리우는 시뮬라크르한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실시간성’, ‘쌍방향성’, ‘탈영역화’ 등의 공간적 특성을 매개로 하는 이 비현실적인 공간은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며 여론을 형성하고, 개인의 의식을 조작하여 삶에 대한 세계관까지 간섭한다.
 이 새로운 소통공간의 공간적 특성은 문학, 특히 글쓰기에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었다. 그동안 몇몇 소수의 문학인텔리에 의해 주도되어오던 글쓰기에 광범위한 대중창작층이 형성됨으로써 문학의 대중화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문학에 관ㅅ미을 갖고 있으나 마땅한 소통공간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통신공간은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역량에 따라 작가로 인정 받을 수도 있는 열려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었다. 문학은 훨씬 쉽게 일반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동안 주변부 장르로 치부되어 왔던 SF나 추리, 환타지 등과 같은 독특한 상상력을 지닌 문학들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맞물려 문학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해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어떠한 합목적성도 갖지 않은채 노출증이나 자기 현시욕으로 일관된 소재중심의 선정적인 글쓰기를 양산해 내었다는 점은 분명 부정적인 모습이다. 양적인 팽창만큼 질적인 수준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지금 통신 글쓰기의 현주소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버문학의 대두가 그 당위성을 갖는다. 사이버문학은 노출증과 자기 현시욕이라는 소아병적인 작가 의식을 지양하고 ‘실시간성’, ‘쌍방향성’을 정보화시대 문학이 견지해야 할 미적특수성으로 전이시킨다. 시뮬라크르한 공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의식이 조작을 직시하고 그것을 상상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담아내고자 시도한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이버 문학은
 이 새로운 소통공간과 전면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새로운 소통 공간이 우리 삶의 제양상들을 변화시켰듯이 사이버 문학 또한 문학의 근본 가치들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가치들을 창출해내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문학은 ‘통신 내부’와 ‘통신 외부’라는 공간적 경계와는 무관하게 작가가 실제 현실뿐만 아니라 의사 현실까지도 포함하는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려는 확고한 작가 의식 하에서 주제적 소재적 세계를 구축한 문학을 일컫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려있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기왕의 문학과 대별되어진다. 창작에 있어 전자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여 일관되고 도식적인 세계관과 창작방법론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실험 정신과 금기에 대한 도전이 옹호되고 또 이루어지는 문학이며, 소통에 있어서는 독자와의 자유로운 상호 교류를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개별 영역이 합쳐지게 되고, 이것이 다시 ‘이어쓰기’와 ‘고쳐쓰기’의 상호 영향 창작으로 이어진다.
 ‘열려있는 문학’이라는 사이버문학의 정체성은 문학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상상력에 있어서도 기왕의 문학과 그 괘를 달리한다.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 제장르이다. 기왕의 문학에서 ‘상상력’이란 현실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일(개연성)’을 미적 특수성의 범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과 가속되면서 우리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현실과 가상현실이라는 두 가지 상호 모순된 그림자를 함께 갖고 있다. ‘있을 수 있는 일’과 ‘있을 수 없는 일’이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앞에 던져지고 있다. 아톰과 비트, 아날로그와 디지털, 물질과 비물질, 영역과 탈영역화로 대별되는 이 두 세계는 점차 경계선을 무너뜨려가면서 우리에게 의사 체험을 가져다 주며(PC통신이나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신세대들을 염두에 두어보자),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가상현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가상현실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문학이 ‘있을 수 있는 일’만을 재현해야 한다고 고집할 때, 당연히 상상력의 빈곤이나 위기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리얼리티의 재현 지점을 현실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도 두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네티즌들에게 그들이 영위하는 가상공간에서의 일상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삶이며,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머드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정체성은 가상현실 안에서 오히려 확고해질 수 있다. 사이버문학이 주장하는 상상력의 위기는, 리얼리티의 재현 지점이 그 영역을 확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기왕의 문학은 그것을 다아낼만한 상상력의 전환을 이끌어내기에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정보화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외연과 내연 모두 시대와 밀접하게 사유하게 될 것이다.
 상상력은 그것이 재현하고자 하는 현실의 변화에 따라 외연이 확장되거나 형질이 전이될 수밖에 없기 떄문이다.
 사이버문학은 정보화사회 안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의식적 소재적 상상력에 열려있으며, 작가의 우월적 권위를 무시하며, 단선적인 소통체계를 거부하는 새로운 시대의 문학 패러다임이다.
 통신공간 글쓰기의 긍정태를 발전시키고 부정태를 지워버리려는 사이버문학의 도전은 이제 그 첫걸음을 내딛었으며 그 미래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은 분명하다. 사이버문학의 가능성은 우리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빠르게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용 욱
<계간 「버전업」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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