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1942년 광주(光州) 출신 이성부 시인은 1959년 고교 재학 중『전남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시인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반영적 주제를 드러내는 시를 쓰는 참여시인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성부 시인의 시는 그만의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 개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의 시들은 시 안에 민중들의 가혹한 고통의 역사를 담아내고 고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좌절감과 억압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시작부터 2행까지 화자는 우리의 기다림과는 상관없이 ‘너’로 의인화된 ‘봄’이 온다고 말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3~6행에서는 ‘봄’에 인간다운 모습을 부여함으로써 해학적인 장면을 그려냈다. 7~9행은 봄과 같이 의인화된 ‘바람’이 봄을 재촉하지만 그런데도 봄은 더디게 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10행에서 화자는, 더디었더라도 마침내 봄이 올 것을 확신하는 태도를 보인다. 3~10행을 정리하자면 너무나 느리고 인간적인 모습을 한 봄이지만 분명 오고야 만다는 화자의 믿음이 표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1행부터 16행까지는 승리자로 표현된 ‘봄’을 예찬하는 화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 겨울이라는 단어는 고난과 시련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반면 겨울이 지나고 자연히 찾아오는 봄은 생명력 넘치는 희망의 분위기를 가진다. 해당 시가 광복 이후에 창작된 시라는 점, 그리고 이성부 시인의 작품 성격을 생각해 보았을 때 화자가 기다리는 ‘봄’은 민주와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와 자유는 겨울 뒤의 봄처럼 분명 다가오고 있지만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온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포기하고 좌절해 기다림마저 잃게 되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시련과 당시의 어두움이, 결국 도래하는 봄으로 즉, 민주와 자유를 통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내고 있다.
  새해가 밝았다. 지금은 아직 겨울이지만 몇 달 뒤면 필연적으로 봄은 온다. 이성부 시인의 ‘봄’은 민주주의와 자유였지만 봄의 의미를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로 확장해본다면, 우리가 각자 마음속에 소중히 품고 있는 ‘봄’의 형태는 참 다양할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올 봄이 당신에게 닿기까지는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어쩌면 우리는 지치고 좌절해서 기다림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저앉아 있는 시간에도 봄은 더디게 다가오고 있다. 새로 만나는 올 한해가 여러분에게 봄이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절제는 감정을 꾹꾹 눌러 쌓아두는 억제도, 그렇다고 무분별한 방종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있을 것이다. 절제는 어렵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홍승진(한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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