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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대신문 | 승인 2019.11.06 15:37|(1157호)

살아 있는 날은
                                                     이해인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몰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1945년 강원도 양구 출신 이해인 수녀(이하 시인)는 1970년 월간「소년」에 동시 부문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수도의 길을 걸으며 주로 영혼 구원, 절대자에게로의 귀의를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녀의 작품은 기도의 형식으로 쓴 작품이 많고 종교적 색채도 짙다. 동시에 우리 주변과 일상 속에 존재하는 평범한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 사용 어휘 또한 어렵지 않고 소박한 단어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일상의 소재에서도 날카롭게 시적 영감을 얻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위 시의 1연에는 절대자를 향한 경건한 삶의 자세가 나타난다. 2연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자세를 ‘몇 번이고 지우는’ 행위로 표현함으로써 자기반성의 태도를 보여 준다. 3연에서는 연필의 상징적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1, 2연에서 글씨를 쓰는 도구로 사용되던 ‘연필’은 글씨를 쓰는 주체인 ‘나’와 하나가 된다. 시적 화자인 ‘나’는 고난과 시련으로 스스로가 희생되더라도 올곧고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4연에 이르러 ‘나’와 ‘연필’과의 관계는 ‘절대자’와 ‘나’, 즉 [나 : 연필 = 절대자 : 나]의 관계로 표현된다. ‘연필’이자 ‘나’로 나타나는 화자는 절대자를 향한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밝은 진리의 말을 쓰는 연필이 되겠다는 것이다. 5연은 흐름에 따라 일렁이다 조용히 사라지는 향내처럼 절대자를 위해 조용해 소멸하겠다는 희생적, 헌신적 태도를 드러낸다.
  여기까지 ‘절대자의 뜻에 따른 경건하고 헌신적인 삶에 대한 다짐’ 정도로 주제를 엮을 수 있겠다. 어렵지 않은 시이기에 주제는 누구나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시와 시를 쓰는 이를 바라보자. 시인은 주변의 흔한 사물인 연필과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 인격과 삶을 투영시키며 시의 의미를 그려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참신함이나 미사여구는 없지만, 시가 그 자체로 맑고 담백한 이유는 이 시가 가진 본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본 시가 전해주는 진실한 삶의 태도는 우리 삶에 있어 본받아야 할 점이다.
  또한, 시를 쓰는 시인의 일상을 겸손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자세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하지만 갑자기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라는 건 사실 꽤 어려운 이야기다. 우리는 특정 물건(컴퓨터, 스마트폰 등)에만 집중하거나, 일상의 사물을 보고 생각을 하기도 전에 지나쳐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평범하지 않은 진실 혹은 본질을 끌어내는 능력은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먼저 가장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하자. 말을 걸어보고, 스스로 대답해보자.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 너머를 보려는 시도를 거듭한다면 평소 보이지 않던 새로운 진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 우리도 무심코 지나치는 모든 흔한 것들에서 본질을 찾아보자. 어느 날 사소한 것의 의미가 당신에게 새롭게 다가왔다면 당신도 아름다운 삶의 본질을 노래할 준비가 된 시인이다.

홍승진(한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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