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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 일구시작과 끝은 항상 동시에 온다.
충대신문 | 승인 2019.06.21 16:28|(1153호)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건 티비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얘기하고 인문학 수업에도 얘기하고, 항상 드라마나 노래의 주제가 되고, 아니 사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몸으로 묻고 있잖아. 근데 우리는 사실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 같아. 삶이 항상 나와 너의 목적 그 자체가 되고 있다고.”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연우의 목소리를, 재희는 찬찬히 듣고 있었다. 1학년 때 만나 졸업반인 지금까지 친구인 은채. 학기 초에 막걸리 동산에서 만나고 몇 달 동안 서로의 바쁨에 만나지도 못했었다. 그 동안 카톡 몇 개를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막상 이렇게 전화로 이야기를 해 보니 지금이나, 몇 달 전이나, 4년 전이나, 항상 엉뚱하고 열정이 넘치는 전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게,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게, 지금 불안한 지면 위에 서 있는 재희를 안심하게 해 주었다. 불과 졸업 한 달 전, 지원했던 회사들에서 탈락의 소식만을 전해 듣던 재희는 딱 한 군데 한국이 아닌 일본에 지원한 회사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기쁘고도 걱정되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떠날 곳이었던 것을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앞으로 행복한 일도 많고 슬픈 일도 많을 거야. 특히 외국에 가니까. 나도 홍콩에 있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이 들었거든.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걸 그들은 ‘love’라고 말하고 내가 ‘힘 내.’라고 말할 때 그들은 ‘cheer up.’이라고 말하는데 그 둘이 완전히 똑같은 말인지 어떻게 알지...? 내가 사랑한다고 한 의미와 힘내라고 한 의미가 당신에게 전해졌을까? 근데 결국엔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분명히 전달되는 것 같아... 어딜 가든 너의 마음을 밝은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넌 행복할거야.”
  전화를 끊기 싫어 아쉬운 대화가 몇 분간 이어지고 결국 재희와 은채는 고별인사를 했다. 만나지도 못하고 이렇게 멀리 떠나게 된 게 마음에 얹혀 스마트폰을 들고 한 동안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일어섰다. 눈을 들어 창문을 보니 밤이었다. 재희는 걷고 싶어졌다. 현관문을 열자 밖에서는 더운 바람이 불어 왔다. 사람들의 옷은 눈에 띄게 가벼워져 있었다. 왠지 그들의 발도 가벼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재희의 발도 가벼웠다. 오래간만에 학생 생활관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희가 처음으로 대전에 와서 둥지로 삼은 곳이자, 은채 같이 소중한 친구들을 만난 곳.     
  오르막길을 오르며 은채는 다른 학생들의 표정을 하나씩 읽어보려고 했다. 누구는 티 없이 행복해 보였고 누구는 근심이 드리워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고 재희는 생각했다.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저 표정들을 지어 왔었고, 앞으로는 더 많은 표정들을 지으며 살아가겠지. 그것은 그것대로 행복한 일일 것이다. 겨울이 되면 두꺼운 옷을 입었다가 여름이 되면 가벼운 차림을 준비하듯이. 그 모든 것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듯이. 기숙사 식당 옆의 계단에서 멈춘 재희는 처음 그곳에 도착해 기숙사 2동이 어디냐고 묻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의 시작이 끝이 났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다시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오유리(일어일문·3)
ur39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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