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빛낸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단재 신채호 선생, 사진

단재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11월 7일 충청남도 대덕군 정생면 익동 도림리, 현재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났다. 사학자와 언론인의 활동을 하며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글을 쓰며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노력했다. 1907년 항일결사조직인 신민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신민회 동지들과 함께 중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가면서 권업회에서 발행하는 권업신문의 주필을 역임했다. 하지만 권업신문이 폐간되고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하면서 사학자다운 면모도 보였다. 1915년 상하이로 가서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신채호 선생은 1919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했지만, 이승만은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주장했기에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승만 배척운동을 주장하며 임시정부 공직을 사퇴했다. 그후 임시정부 기관지인 주간지 신대한을 창간했다. 1923년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창조파의 주동역할을 한 후 무정부운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신채호 선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사학자와 언론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이름은 들어본 독립 운동가지만, 자세한 활동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쌓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업적을 한 번씩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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