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클래식하게

노유준 편집부장, 경제학과

기자는 지난 3월 22일 서울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렸던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내한 연주회를 다녀왔다. 1975년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이후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군림하며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짐머만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제 3번, 쇼팽 스케르초 전곡과 앙코르로 쇼팽의 마주르카 14, 15, 17번을 연주했다. 컨디션 난조로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깐깐하기로 유명한 짐머만이 콧물을 훌쩍이고 관객들과 농담을 하며 소통하는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기자는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의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주위 사람들은 대중음악 대신 클래식만 듣는 기자를 이상하게 보곤 한다. 확실히 즉흥적이고 표면적인 3~4분짜리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 짧게는 10여분, 길게는 몇 시간에 이르는 고전 음악은 확실히 현대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지루한 클래식을 왜 듣느냐고? 음악이 내포한 여러 가지 의미를 음미하며 사색할 수 있는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작곡가, 연주자를 거쳐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작곡가가 음악 속에 담은 심상과 삶을 찾아 공감 지점을 찾는다. 감사하게도,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기록 매체들이 존재해 작곡가의 삶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자가 사망한 지 수십, 수백 년이 지난 고전 음악의 경우, 오직 희미한 잉크 자국을  통해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수많은 전쟁과 혁명의 역사를 지나면서 소실되기 일쑤였다. 연주자는 부족한 자료와 악보만으로 작곡가가 의도한 사상과 감정을 연구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연주자도 사람이기에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 각기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연주자의 연주라도 관객들의 2차 해석은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클래식 음악은 최소 2번 이상 다르게 해석된다. 클래식 음악의 감상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음악 속에서 작곡가와 소통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이 또한 클래식 음악의 큰 매력이 된다. 관객 개인에게 다가오는 음악의 가치는 자신의 성장과정, 경험과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일 것이다.  따라서 클래식 감상에 정답은 없다.
  두 번 해석된다는 것, 이 점은 신문과도 많이 닮은 것 같다. 신문에 실린 모든 사건은 기자와 독자를 거쳐 해석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자들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작곡가를 잘 이해하고 전달하는 일이 연주자가 지향해야 할 목표듯, 사건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자가 추구해야 할 가치다. 기자만의 독특한 시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시할 것은 사건의 본질이다.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언론 매체로써 신문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기자를 포함한 지금의 젊은 세대는 유튜브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로도 기존 언론매체를 접속하지 않는 형국이다. 이는 충대신문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들도 존재 의미를 자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존재 의미를 증명해야 한다. 유튜브나 sns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깊이 있는 보도로 차별성을 입증해야 한다. 제목 장난처럼 자극적인 기사나 신속성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과 경쟁할 수 없다. 이미 새로운 플랫폼은 그러한 방면에서 우월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신규 플랫폼과 차별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언론 매체로써 신문의 생존 여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신문은 다시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자도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듯, 사건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해석하자. 독자들이 사건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독자의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게 기사를 쓰자. 기자 뿐 아니라 독자들도 음악을 감상하듯, 기사가 가진 의미를 음미해보자.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소명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기자와 독자, 우리 모두 좀 더 클래식해져야 할 때다. 바쁜 일상에 치여 언론이 가진 가치를 훼손한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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