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쯤이면 치러지는 연중 행사의 하나가 사은회이다. 그동안의 가르침에 가사한다며 술잔과 큰절을 올리고, 또 스승에 대한 덕담도 가려서하며 사회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약속된 만남과 이별, 끝과 시작에 스며들 수 있는 아쉬움과 두려움을 미래의 희망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으로 함께하던 사은회과 올해는 남달리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정치, 경제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당면한 취업 전쟁이 가세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스승은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서두를 꺼낸다. 진로에 대해 물으며 관심을 보이고 격려하며, 제자들의 인생에 거는 희망과 기대를 힘주어 얘기한다.
 사실, 사은회가 열린 즈음에 학생들이 취업 때문에 바삐 움직이며 대화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사실 취업 얘기가 빠진다면 한두마디 일상적인 말을 건넨 후 할 얘기가 궁색하다. 그런데 올해 같은 상항에서는 취업을 염려해주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화두만으로 시종 술잔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시기 적절한 화제가 끊기고 보니 어느 학생하나 다정하게 다가가서 말을 건넬 수가 없다. 공부 얘기 빼고는 물어볼 게 없다. 그동안 학생들과 마음을 나눌 기회를 갖지 못한 자책감이 더 크게 불거져 나온다.
 특히 요즘의 학생들은 자신을 찾고 인생을 얘기해야 할 시간을 대하입시 준비에 할애한다. 뒤늦게나마 대학에 들어와 자신을 세우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겠지만, 어느덧 또 다시 취업 전쟁에 떠밀리고 마는 것을 보면 부속품화된 인생에 짜증마저 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시간 위에 떠서 흘러간다. 간혹 고통스럽거나 침체된 모습을 볼 때면 다가서서 마음을 열어보고 싶으나, 진짜 포기하고 싶은 이기심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이럭저럭 새벽 가까이 술판과 노래방이 어우러진다. 오늘밤만이라도 취업걱정일랑 걷어버리자. 어렵기만 했던 교수님께 술을 빌어 다가가 어깨동무 해보자 “교수님 신나는 걸로 부르세요.” 그러자꾸나, 아무 생각없이 뒤엉켜 놀아보자꾸나.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죄책감을 이렇게라도 씻어보자. 진작에 맞대야할 가슴들이었지만 이제 너희들 떠나보내면서 시작해 보자꾸나.

김 도 진
(재료공 ·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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