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 - 비래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을 찾아

 그 곳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 건물이 있었다는 흔적인 콘크리트 시멘트가 잘게 부서진 파편들과 누군가 버린 쓰레기만이 그 곳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비래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이었다. 그 곳이 아파트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심하게 손상된 아파트 진입로뿐이었다.
 벌써 재건축얘기가 나온지 8년째가 되어간다. 더욱이 철거된지도 4년여시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재건축공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시멘트파편이 마모되어 각진부분이 없는 것으로 그 세월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겨우 13평짜리 아파트가 전재산이었던 주민들은 몇년동안 셋방살이를 전전해야 했다.
왜 아파트가 지금까지 재건축되지 않아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일까?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8년전 재개발을 위한 조합이 결성되었다. 당시 조합장으로 유정숙(여 · 62세)씨가 선출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강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재건축을 원하던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주민의 인감이 위조 · 도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검찰에 제기했지만 무혐의 처리되었고, 유씨가 그대로 조합장을 맡아 운영해 나갔다.
 90년 (주)삼호와 재건축공사 계약을 맺었고, 같은해 이주비로 8백만원을 2백64세대에게 대여해 주었다. 그런데 93년 조합장 유씨가 재건축회사를 (주)삼호에서 한신공영으로 바꾼것이다. 계약체결 당시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체 조합장인 유씨와 대의원 5명만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신공영과의 계약시 (주)삼호가 대여해 주었던 이주비 24억과 이자를 포함한 50억을 조합에서 책임진다는 계약을맺은 것이다.
 갑작스런 시공회사의 변경과 불공정계약으로 (주)삼호에서 이주비를 대여받은 2백 64세대에 대해 가압류 및 일부 경매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2백 64세대의 주민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고스란히 집마저 날릴 위기에 처해버렸고, 압류 상태이기 때문에 공사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5백5세대 2천여 주민은 말 그대로 거리에 내던져질 위기에 처해졌다.
 주민들은 모든 것이 유씨의 조합변칙운영과 자금운용의 의혹 등의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유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유씨의 친동생이 검찰의 고위간부이기 때문에 구속시키지 않는 것이라 한다. 2천여의 법정공방 끝에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데모도 많이 했다고 했다. 경찰서 앞에서, 법원 앞에서, 심지어는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해 보았다고 했다. ‘성역없는 수사하라’고 신문에 광고도 냈다. 그런데 소용없었다.
 한 조합원이 이런 말을 했다.
 “돈없고 빽없는 서민이 죄지, 죄야”
 정말 그들은 절실해 보였다.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주민들은 겨우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처지였다. 어떤 주민은 원호대상자로 보훈청에서 대출받아 생활하고 있고, 어떤 주민은 유등천 근처에서 붕어빵 장사로 겨우 먹고 살고 있다고 했다. 또 한 주민은 도배를 해주며 살고 있는데 얼마전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13평 아파트 한채가 전재산인 주민들은 이제 힘이 든다고 한다. 회의가 든다고···. 수사가 더 진행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하루벌어 하루먹기도 힘든 상황에 계속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방법으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특이하게 엽서로된 용지에 서명을 받는다. 다행히 많은 시민들이 동참해 약 8천여통가량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서명운동은 올 연말까지 계속된다는 계획이다.
 기자가 한번은 왜 그렇게 유씨의 구속에 집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것이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의 첫단추지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가다가 서명받는 사람들 만나면 서명 좀 해주세요”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한번은 충대에도 왔었는데 여느 대학에서 받은 것보다 적어 실망을 했다는 얘기도 했다.
 다시 그 공사현장에 가 보았다. 을씨년스런 날씨와 더불어 황랑하기 그지없는 그 곳이 더 슬퍼보였다. 잎사귀를 다 떨군 나무 한그루의 꼭대기에 까치집처럼 보이는 새집이 있었다. 그런데 새는 보이지 않았다. 새들도 떠나버렸나. 하지만 주민들이 그 곳에 돌아올 때 그 새도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돌아오면서 지금 암 말기로, 병원에서조차 가망이 없다고 해서 집에 계시는 백용숙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할머니는 삯바느질 해서 장만한 아파트라 했다. 그리고 
 “아파트 짓는거 보고 죽는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가난한 서민에게 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김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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