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명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백 명의 시민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됐다. 또 다른 수천 명이 부상당하거나 구속·구금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다. 광주 같은 큰 도시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일이 어떻게 무려 7년 동안 마치 없었던 일 마냥 감춰질 수 있었을까. 언론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백주대낮에 벌어진 참상도 없던 일이 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언론 환경은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바뀌었다. 언론사에 입사하지 않아도 취재·보도 활동을 할 수 있다. 직업기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1인 미디어도 적지 않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미디어를 활용해 누구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다. 덕분에 사회 곳곳에 똬리를 튼 병폐와 부조리가 속속들이 들추어지고 있다. 언론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세상도 조금씩이나마 정의롭고 투명해지고 있다.
  명과 암은 공존하는 걸까? 미디어에 대한 개인의 접근권이 향상되고 발언권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거짓 또는 왜곡된 정보를 사실인 양 오인케 하는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가짜뉴스의 폐해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사회 구성원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기 다반사이며, 민의를 수렴하는 선거 결과를 왜곡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가짜뉴스의 전파 속도와 범위는 일반 뉴스보다 훨씬 빠르고 넓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인간은 관계 맺지 않고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디어 환경의 도래는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지향성의 소산이다. 이를 악용해 사적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시도는 공동체 파괴 행위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가짜뉴스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자칫 민주주의의 고갱이와도 같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해악임에 틀림없으나 근절하기란 쉽지 않다. 유일한 치료제는 더 많은 ‘진짜뉴스’일 수밖에 없다. 그릇을 크게 만들어 독소를 희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널리즘 고유의 ‘팩트 체킹’과 게이트키핑 기능에 충실한 언론이 더 많아져야 한다. 아울러 언론 본연의 권력 감시는 물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핵심기제로서 공론과 여론을 형성하는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진실을 따지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심지어 무시해 버리는 탈 진실(post-truth) 시대에 접어들수록 가짜뉴스의 위세를 능가하는 진짜뉴스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진짜뉴스의 그릇을 키우는 일은 분열과 혐오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다. 대학도 결코 작지 않은 하나의 공동체다. 바로 대학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다. 학내의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공론의 장으로서 대학언론의 존재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적 영역에 머물기 쉬운 학내 구성원들을 지각 있는 공중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창간 64주년을 맞은 <충대신문>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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