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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자국을 남긴 여성인물삶에 있었던 모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충대신문 | 승인 2018.10.02 18:24|(1143호)

  1년 전, 10년 동안 같이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나는 길에서 할머니들이 걸어가시는 모습을 볼 때 버튼이 눌린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난다. 특히 다리가 불편해 뒤뚱뒤뚱 걷는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분들을 보면 마음이 찡해지기도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 할머니는 손이 정말 크다. 정확히 말하면 손의 크기는 나만큼 작은데 그 손에 담아주고 싶어 하는 것이 컸다.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은 모든 할머니들의 마음인 건가. 가끔 그 마음이 잘못 전달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찢어진 청바지를 하나 사서 행거에 걸어두었는데 내가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그 청바지가 말끔히 꿰매져 있었다. 꿰맨 자국만 남은 청바지를 들고 아무래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허무해하고 있는데, 할머니는 손녀가 낡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뒤로는 찢어진 청바지를 사면 행거 밑에 잘 숨겨놓는 게 일이었다.
  예전 살던 집은 주택 2층이었는데, 옥상도 꽤 넓어 고추나무도 몇 그루 심었었고 이불을 널만한 긴 빨랫줄도 있었고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집을 올려다보면 할머니는 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선 반가운 사람이 오면 송곳니까지 보일 정도로 엄청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 웃음이 나는 요즘 제일 그립다. 지금은 옥상도 없고 할머니도 없어서 더욱. 
  내가 제일 좋아했던 할머니와의 시간은 할머니랑 같이 드라마 보는 시간이었다. 가정사가 복잡한 내용의 일일드라마를 보면서 할머니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난 그 옆에서 해바라기씨 같은 걸 까먹으면서 할머니의 부연 설명을 듣는 걸 좋아했다. 특히 밤이나 호두는 할머니가 나보다 더 잘 까줬는데. 그때는 알맹이만 쏙쏙 골라 먹는 못된 손녀가 되어도 괜찮은 줄 알았고 그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될 줄 알았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나서는 할머니께 못해 드린 일만 많이 생각났다. 할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상처 주는 말만 했던 기억, 제대로 된 용돈 한번 챙겨드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내어 드렸던 것, 해외 직구는 능숙하게 잘하면서 미국에 계신 삼촌에게 영상통화 한 번 안 시켜 드린 것, 날이 너무 덥고 다리가 불편하니 좀 일찍 일어나 성당에 태워달라고 하셨을 때 귀찮아하면서 잠만 잤던 기억들은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로 남아있다.
  보고 싶은 누군가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건 공허하고 무서운 일이다.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에 담긴 할머니는 그 삶의 고단함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작고, 적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데, 눈물이 나기도 전에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장례지도사의 말이 있었고, 며칠지나 찾아간 할머니가 계신 곳에는 잔디가 덮여 이름과 생년월일만 차갑게 남아 있었다. 마주 보던 할머니를 발밑에 내려다보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실감이 안 나는 일이다.
  삶에 있었던 모든 돌이킬 수 없었던 것들은 이렇게 자국으로 남는다. 그 자국은 어떨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고 계속된다.

BOSHU포토그래퍼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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