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원래의 이솝우화에 ‘개미와 매미’로 되어 있다. 이 우화는 우리에게 젊은 시절을 낭비하지 말고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가르친다. 프랑스의 우화작가 라퐁텐느는 다시 쓴 ‘개미와 매미’에서 이야기의 끝부분을 변형시켰다. 즉 매미가 굶어 죽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개미는 춥고 배고픈 매미에게 “무덥던 여름날 당신의 노래는 내게 큰 힘이 되어 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다오. 이제 춤도 추어 주세요” 하며 환대한다.
 라퐁텐트의 우화는 재치가 번득이는 문체로 프랑스 정신을 잘 나타낸다. 위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프랑스 정신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조화이다. 우리는 흔히 개미형의 인간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매미형 인간은 불필요한 것으로 폄하해 버리기 쉽다. 그러나 개미가 보여주는 근면, 노력, 준비, 실용 등의 가치 옆에는 매미가 의미하는 희망, 꿈, 이상 등의 가치가 존재한다. 매미의 노래를 우리식으로 말하면 시가 되고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된다. 개미가 ‘많이 버는 것’을서 ‘양’을 상징한다면 매미는 ‘품위있게 사는것’으로서 ‘질’을 보여준다. 이 두가지 가치는 우열을 따질 수 없는 상보적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국가 정책, 대학교 학과의 분포, 사회의 요구 등은 너무 개미형에만 집착한다. 인문학에 대한 천대와 문화 예술에 대한 박대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매미형의 인간이 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노래가 없는 라디오, 그림 없는 달력, 드라마 없는 텔레비젼, 영화 없는 사회, 시나 소설이 없는 출판계... 한마디로 캄캄하고 삭막한 세상이다. 매미의 노래는 이렇게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간정신을 고양시킨다. 오늘날 많은 사회문제의 중요한 원인을 여기서 찾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어차피 개미형에 가까워진다. 잠을 추구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젊음만이 갖는 특권 중에는 순수한 꿈과 지고한 이상이 있는 것이다. 피카소가 “나는 젊어지기 우해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한 말은 바로 꿈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말이며 평생동안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충대생들이 개미처럼 공부하기 위하여 갖고 다니는 토익과 토플 책 곁에 매미의 노래를 듣기 위하여 읽어 보는 시집이나 계간지가 놓여지길 바란다.
 
 박 찬 인
(불문 ·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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