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리고 끝

이정훈 편집부장/ 물리학과

  종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실험 발표 하나와 전공 시험 두 개를 치러내면 지난했던 이번 학기도 끝을 맺는다. 기자의 자존감은 매 학기 종강일 즈음에 바닥을 마주하고, 다시 방학을 거치며 원래의 상태를 되찾는다. 이를 설명하기엔 ‘밀당’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끝없는 밤샘과 그럼에도 만족할 수 없는 학업의 성취, 그 사이에서 생겨난 깊은 회의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던 학기였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기에 종강을 앞에 둔 지금에서야 이번 학기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성찰을 할 수 있다.
  재작년 여름 친구와 떠났던 여행이 생각난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해, 그때는 무엇이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당시 또래 친구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기자와 성격도 비슷하고 하는 짓도 비슷한 친구와 함께 여름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우리는 다른 이들이 쉽게 생각지 못하는 여행지만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드라마 ‘미생’을 촬영한 요르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암만 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마지막 기말시험이 끝나서야 우리는 요르단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요르단은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나라가 아니었기에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어떻게 숙소는 겨우 예약을 했으나, 교통편, 음식점, 관광지 등 여행에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가 충분치 않았었다. 그러나 둘 모두 ‘가서 직접 부딪히면 된다’는 일념 하나로 비행기를 탔다.
공항 입국심사대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요르단은 한국과 무비자 협정이 없는 국가이고 여행자에게 약 7만원의 발급수수료를 받고 입국심사대에서 비자를 발급해준다. 친구는 요르단 관광청에서 비자와 관광지 입장료를 묶어 파는 ‘패스’를 구입했었고 입국 시 이를 사용하려 했으나 ‘패스’ 구입 시점이 맞지 않아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결국 실랑이 끝에 친구는 ‘패스’ 사용을 포기하고 입국했다. 입국심사원의 알아듣기 힘든 영어 발음 덕분에 실랑이가 길어진 것은 덤이다.
  공항을 나서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공항에는 수도 암만 시내와 이어주는 셔틀버스가 있었고, 우리는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와 친구 둘 모두 아랍어를 한마디로 몰랐기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글자와 들을 수 있는 단어는 공항에서부터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호객을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택시기사는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다. ‘여기서 끌려가면 한국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사기를 당한다면 남은 돈으로 한국에 돌아 갈 수 있을까?’
  여행의 매 순간 의심의 의심을 거듭할 때마다 우리는 글과 말의 소중함을 깨달았었다.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알 수 있던 순간들이었다.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요르단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지금 그 때의 순간이 무서웠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겁 없던 그때의 순간이 그리울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 역시 요르단에서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학기 역시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끝을 앞둔 지금에서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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