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게임은 끝났죠? 제가 졌네요

  나는 또 연애 이야기를 한다.
  BOSHU 팀원들이 지정한 노래는 원투의 ‘자 엉덩이’였으나 엉덩이엔 별다른 애착이 없으니 몰래 바꾸겠다. 요샌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만 재밌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세 번 봤다. 한여름 이탈리아 북부의 쨍한 햇빛과 하늘색과 풀색과 물색. 두 남자의 허벅지 반도 안 가리는 반바지의 쨍한 색. 알리오올리오를 연상하게 하는 주인공 이름 엘리오와 올리버. 그런 것들이 기억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미인들이 사랑하고 담배 피우고 책 읽고 수영하고 살구 먹고 담배 피우고 섹스하는 영화라 계속 보고 싶었나. 
 두 시간 중엔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유독 좋았다. 자기의 마음이든 상대의 마음이든. 엘리오는 어느 순간부터 시야에 올리버가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소설을 봐도 피아노를 쳐도 올리버에게 연루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눈으로 녹화를 하고 싶어졌다. “넌 모르는 게 없지?”,“난 아무것도 몰라요, 올리버.”,“넌 여기 그 누구보다 많이 아는데.” 구체적인 단어 없이도 느껴지는 것들.
 “그 얘기를 나한테 왜 하고 싶은데?”,“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내가 알아야 할 것 같다고?”,“알아줬으면 해서요.” 아는 전제들.
 빙빙 돌다 어느 날 자정에 둘은 만난다. 옆방에서 서로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이쪽으로 올까, 기대하거나 에이 안 오네 실망하던 답답함은 견딜 만한 것이었다. 둘은 만났고 키스했다.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건 합일의 욕망이라고, 어떤 영화 평론가는 그렇게 해석했다. 
 알리오올리오 커플이 다른 커플의 이야기보다 잘 꽂히는 이유는, 그간 내가 사랑을 떠올릴 때 따라붙던 질문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둘 중에 더 ‘진짜’인 것은? 일 번, 일상을 공유하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맞춰나가고 서로가 생활의 일부가 되는 관계와 이  번, 떨어져 있지만 서로가 각별한 존재라는 걸 알면서 머릿속에서 추측과 상상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는 관계. 극단적인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나는 혼자 심각했다. 매번 이 번이 이겼다.
 엘리오가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고 벽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영화는 멈춘다. ‘Visions Of Gideon’ 노래를 들을 때. 6주간의 만남을 끝으로 헤어진 둘에게 엘리오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할 때. “엘리오, 네가 느낀 기쁨과 슬픔 모두 간직하렴. 너희 두 사람은 아주 특별한 마음을 나눈 거란다.” 그건 알죠. 상실이 클 뿐.
 사랑하게 될 것 같은 그 사람이 없는 안전한 곳에 가서, 마음 놓고 그를 그리워하기 위해 현재를 유예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침대에 누워서 당신과 닿았던 날을 상상하며 그것이 현실이던가 묻는 일은 또... 정신승리가 우리를 지켜주나?
 우리 사이에는 특별한 게 있었다며 시간이 지나면 자신마저도 잊어버릴 감정을 박제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정에 만나겠다. 우리가 왜 서로에게 이토록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나.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다 짜증 나는데 당신은 왜 괜찮은지. 손을 잡거나 얼굴을 만지거나 눈을 보면서 당신은 당신의 이름이 마음에 드냐고 묻겠다. 전략도 비장함도 없이 그렇게. 지는 게임이라도 할 땐 재밌으니까.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져도 상관 없다고 마음 먹으면 다른 세계가 등장한다.

BOSHU 편집국장 서한나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