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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의 역사를 만나다웹 대중화 운동의 최전선, 우리 학교
이정훈 기자 | 승인 2017.09.18 10:12|(1131호)

  1995년 3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우리 학교 공대1호관 취봉홀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시 취봉홀은 모여든 인파로 발 디딜 자리조차 없었다. 제 1회 WWW 워크샵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이 워크샵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웹을 알리고 사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개최됐다.
  1994년 학술전산망워크숍에서 KAIST 최우형은 웹에 관심있는 사람을 위한 메일링 리스트를 소개했다. 이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던 사람들은 웹코리아(WWW-KR)라는 모임을 만들어 ETRI 김용운 연구원을 에디터로 해 <가자, Web의 세계로!>라는 E-book을 집필하기도 한다. 웹코리아가 주최한 WWW 워크샵은 우리 학교에서의 1회 강연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웹 대중화에 힘썼다.
이와 동시에 1996년에는 '정보엑스포 96'이 열렸다. 정보엑스포는 전시관을 웹페이지로 구축한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세계 최초의 가상 박람회였다. 차세대 정보통신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기획된 이 행사를 계기로 한-일간 T3(45Mbps)급 고속회선이 개통됐다. 각 전시관은 WWW의 하이퍼링크 방식으로 제작됐다.
  정보엑스포를 위해 개통된 T3급 고속회선은 제4회 학술정보망워크숍에서 빛을 발한다. MBone-KR가 소개한 멀티캐스트 가상망 기술과 고속회선을 이용해 학술정보망워크숍 행사 실황이 전세계로 생중계된 것이다.
  당시 MBone-KR과 '정보엑스포 96', 우리 학교 정보통신공학과 학내 동아리 CoI의 멤버였던 주용석(정보통신공학·95학번)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용석씨는 LG CNS와 Nortel을 거쳐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Q. ‘정보엑스포 96’은 어떤 행사였나?
  A. ‘정보엑스포 96’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 인터넷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사업이었다. 당시 행사에서는 우리 학교쪽 멤버로 참여했다. ‘정보엑스포 96’ 기간 동안 우리 학교 정보통신공학과는 인터넷 카페 및 인터넷 무료 강좌를 일반시민 대상으로 개최했다. 1996년 당시 우리 학교는 초고속 선도망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몇 안되는 학교 중 하나였다. 우리는 그 인프라를 기반으로 ‘정보엑스포 96’ 사무국에서 PC와 기타 장비를 공여받아 1년간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무료강좌를 실시했다. ‘정보엑스포 96’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 입문 백서 ‘멀티미디어 인터넷 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활동들은 과내 동아리인 CoI의 94, 95, 96학번 학생들의 주축으로 이뤄졌다.

   Q. CoI는 어떤 동아리였나?
  A. CoI(Call of Internet)는 정보통신공학과 과내 동아리로서, 발족 당시 김대영 교수님으로부터 2대의 워크스테이션 (Sun Sparc 10, Sparc Classic)과 다수의 PC, Mac을 지원받았다. 이를 이용해 DNS Server 및 Web Server를 운영했고, 가상 강의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온라인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

  Q. 웹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인식은 어땠나?
  A. 사실 웹이라는 기술이 굉장히 빨리 발전된 기술이기에 특별한 인식이라는 것은 필요치 않았다. 웹 초기에는 일반인의 인터넷 이용은 굉장히 드물었다. 반면 전자/정보통신/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은 인터넷 이용에 큰 어려움이 없어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특히 그 당시에 대부분이 갖고 있지 않던 이메일 주소를 과의 모든 학생이 소유하고 이를 통해 과제를 제출했다. 이메일을 위해서 정보통신공학과는 학과 내에 자체 메일서버를 운영했다. 이 서버는 92학번 황인용 선배께서 초기에 구축·운영했고, 본인도 한동안 관리를 했다. 자체 도메인 네임을 우리 학교학교 도메인 내에 가지고 있었다. WWW라는 개념이 처음 한국에 소개됐을 때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의 기여가 컸다. 초창기 우리 학교 메인 홈페이지는 컴퓨터공학과와 정보통신공학과 학생의 참여로 구축·운영됐다. 물론 나중엔 전산원의 전문 인력이 이를 담당했다. 당시 홈페이지를 가지고있는 대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카이스트, 포항공대 다음으로 우리 학교가 홈페이지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용석씨는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분으로 당시 정보통신공학과에 재직했던 김대영 교수를 꼽았다. ‘정보엑스포 96’ 등의 행사에서 우리 학교가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영 교수의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대영 교수는 학생들에게 항상 실무적 활동을 강조하며 학과 동아리를 창립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줬었다고 했다. 김 교수가 기억하는 당시의 웹을 들었다.

   Q. 인터넷은 어떻게 도입됐나?
  A. 인터넷이라는 것은 1970년대 개발돼 컴퓨터 연구자들끼리만 썼다. 1990년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연구원인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했고, 그 때 이후 폭발적으로 웹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월드와이드웹은 문서검색을 위한 소프트웨어였기에 텍스트 기반이었다. 마크 앤드리슨 등이 개발한 최초의 브라우저 모자이크는 텍스트 기반에서 오는 불편을 해소했다. 브라우저 모자이크는 매킨토시의 하이퍼 카드라는 프로그램에 영감을 얻어 개발됐다.

  Q. 제1회 WWW 워크숍이 1995년 공대 1호관 취봉홀에서 열렸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A. 당시 인터넷에 관한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때 이야기 나온 것이 모자이크를 제일 잘 다루는 학생이 우리 학교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교수인 본인조차 누군지 몰라 물었더니 컴퓨터공학과의 이강찬 학생이라고 했다. 학생을 학교에서 직접 만나봤더니 정말 모자이크를 써 웹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강찬 학생은 나중에 이규철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ETRI에서 연구원으로 있다. 서울과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인터넷 부흥 운동이 활발했고, 본인 역시 이 활동의 핵심 멤버였다. 이를 계기로 정보통신공학과에 CoI라는 학부 동아리를 만들었다. CoI는 Call of Internet의 약자다. 학부 학생을 중심으로 워크스테이션 등을 지원해주고 인터넷 node의 관리를 맡겼다. 그러니 서로 공부하며 배운 것을 발표하며 활동했다. 정보엑스포에는 우리 학교 학생을 대여섯명 정도 파견했다.

  김 교수는 당시 인터넷이 보급된 대학이 한국에 몇 없었으며, 한국에 왠만한 대학에 인터넷이 보급의 여러 부분에 활발하게 우리 학교 학생들이 활동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 학교는 인터넷의 시작에서부터 중심에 서 있었으며, 지금도 그 역사를 이어 써나가고 있다.

이정훈 기자  leejunghoo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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