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판 : 꽃같이 살래. 나답게 '선미'

  원래는 소녀시대(2)를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선미의 댄서 성별 반전 막방(마지막 방송)을 보아버렸고 선미를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번 주는 선미를 쓴다. (부디 이 글을 읽은 독자 중 선미 성별 반전 무대를 보지 않은 자가 있다면 꼭 보길 바란다. 그리고 선처해주시길!)

  '가시나' 뮤비(뮤직비디오)부터 이야기해보자. 뮤비는 전형적인 소녀 클리셰를 덕지덕지 붙인 선미로 시작된다. 발그레한 두 볼, 동그랗게 눈을 뜨고 빨대로 쉐이크를 마시던 선미는 (아마도) 이별을 당한다. 순수한 소녀는 여기서 끝난다. 선미는 테이블을 타넘고 쉐이크를 컵 째로 마신다. 그리고 노래는 시작된다.
  클리셰를 부수며 시작하는 뮤비 도입부에서는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그 많은 걸그룹이 던지지 못한 순수한 소녀상을 던진 선미는, 그제야 선미답다.

  '가시나' 노래는 내내 과잉된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보통의 이별 노래와는 다르다. 남성에게 사랑받길 울부짖고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 ‘왜 예쁜 나를 두고 가시나’라며 이별의 원인을 나에게 두지 않는다. ‘남성연인에게 버림받은 여성’이라는 지긋지긋한 주제를 '가시나'는 새롭게 풀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가사를 보자. ‘꽃같이 살래. 나답게’ ‘정말 꺾인 건 지금 내가 아냐. 바로 너야’ 선미는 당당히 자신의 자존감을 세운다. 예쁜 나는 나답게 살겠다고 꺾인 건 너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당당한 여성이란 말인가.
  ‘꽃’은 많은 경우, 사실 모든 경우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이용됐다. 여성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함으로써 인간임을 지우고 주체성을 배제하고 ‘예쁘고 보기 좋은 모양새’만 강요한다. 그러나 선미가 말하는 ‘꽃같이 살래 나답게’에서 ‘꽃’은 조금은 다르게 해석된다. ‘너 없이 나답게 살겠다’는 선언적이며 독립된 주체로 다가온다. (뭐 물론 그럼에도 썩 좋은 가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 이제 전설이 될 성별 반전 무대를 이야기 해보자. 여성 댄서는 박력 있게 선미를 감싸고 들어올린다. 남성 댄서는 선미 곁에서 가장 요염하게 춤을 춘다. 한국 사회에 공고한 성역할을 때려 부수는 2분 57초다. 2분 57초가 보여주는 바는 ‘남자답다’ 또는 ‘여성스럽다’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다. 댄서들은 자기 위치에서 맡겨진 안무를 최고로 소화했고, 여기에 감히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낄 자리는 없다. 하나의 멋진 무대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러니 어서 다들 선미 '가시나' 무대를 보길 바란다. 그리고 다음호에는 정말 소녀시대(2)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리며.

( 다음호에 만나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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