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김채윤 편집국장/고고학과

  최근 운전하면서 매일 듣는 노래가 있다. 어반자카파의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이라는 노래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핑계를 대는 나는 떠나는 사람. 어쩔 수 없는 거냐고 몇 번을 되묻는 나는 남겨진 사람. 이젠 잊을 때도 됐어. 그만 했어. 추억과 떠나는 사람"

  나는 요즘 이 노래가사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애절한 연인과의 이별 때문은 아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대전’과의 이별 때문이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전주에서 생활한 전주토박이다. 전주는 재미없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면 영화관과 노래방을 전전했다. 버거킹이 고등학교 때 처음 전주에 생겼다. 지방소도시의 한계에 부딪혔고, 큰 도시에 나가고 싶었다. 취직도 걱정이었다. 재미도 없고, 미래도 없었다.
  기대했던 것처럼 대전은 편리했다. ‘자연재해도 없고, 사고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도시이긴 하지만, 적당히 살 만한 도시였다. 3년 동안 나름의 추억도 쌓았다.
  요즘은 대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생활 영역이 대전에서 서울로 바뀌었다. 한달이지만 ‘대전’과 이별을 하게 됐다. 대전에 있을 때는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곳곳의 번화가, 사회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체감할 수 있는 환경, 수시로 열리는 문화 행사들…. 재미있는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다.
 서울에서 생활을 하며 ‘서울에서의 삶’을 겪어봤다. 새벽까지 운행하는 심야버스, 밤늦게까지 환하게 밝혀진 도시의 불빛 등 어느 도시보다 편리하고 아름다운 도시면서 새벽에 출근을 하는 사람들,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쉬지 않는 도시였다. 편리함의 이면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대전을 떠나고 싶지 않아졌다. 노래가사처럼 ‘추억과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서울에서의 바쁜 삶을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대전을 떠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배우고 싶은 강좌가 서울에서 열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서울에서 네트워크를 쌓아야한다. 모든 편리함을 포기하고 대전에 남을 자신이 없다. 잠깐 동안이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니 확실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수많은 이유가 서울에 살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많은 지방의 청년들이 서울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지방에선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서울만큼의 ‘질’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위해서 노량진에 간다. 기업의 입사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대외활동 면접을 위해 버스에 몸을 싣는다. 멘토링이나 특강을 듣기도 힘들다. ‘00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라고 지원 자격이 명시돼있지만, 평일 저녁에 서울에서 열리는 특강 일정은 ‘서울 거주’라는 무언의 조건을 걸고 있다. 지방에 남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한다.
  ‘지방 청년의 어려움’에 대한 논의도 생산적이지 않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서 지방 청년의 어려움을 말한다. 우리나라 20~39세 인구 가운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청년들의 비율이 100명 중 53명인만큼 (2017년 5월 통계 기준) 서울과 그 인근 청년들이 청년 정책의 대표가 된다. 100명 중 47명.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방 청년들은 소외된다.
  최근 지방을 떠나는 청년을 붙잡기 위한 지자체들의 노력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자체 정책의 화두가 ‘청년’이 되고 있다. 지방 청년들의 지역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 주거와 결혼 및 양육과 부채 등 다방면에 걸친 개선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작업이다. 지방을 벗어나거나, 포기하거나. 두 가지밖에 없는 지방 청년들의 선택지가 보다 다양해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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