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낭만, 그리고 욜로

얼마 전 집에 내려가 아버지와 저녁을 먹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낭만이 없어” 라고 말씀하셨다. 언제부턴가 사회는 ‘청춘들이여 꿈을 가져라, 그 꿈을 위해 노력해라’ 라는 말을 슬로건을 내세우는 듯하다. 당연하다는 듯이 공부를 하고, 의심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지레 겁을 먹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러한 많은 청춘들 중에 한 명이다. 그런 것을 의심해 본 적도 없고, 의심하더라도 한낱 대학생 중의 한명이 어떻게 만연한 사회 풍조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러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그 한 마디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 행동을 반성하게 했다.
  ‘낭만’이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를 뜻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현 시대에 정 반대의 단어인 듯하다. 하지만 과거, 아버지의 세대들은 낭만이 있었다. 통기타를 짊어 메고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감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즐겼다. 물론 모든 대학생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아버지만큼은 그랬고, 아버지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겼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생들은 어떤가. 나의 시간이 흘러감을 다른 사람의 시간의 흐름과 비교한다. 좀 더 빡빡하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꿈이 이것이 맞는 가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찬 그런 시간을 누가 더 잘 가지는가로 경쟁한다.
  과거의 대학생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전혀 아니다. 과거에는 과거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었고, 대학생들은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했다. 작게로는 개인적인 학업과 집안 사정, 크게로는 거대한 민주화의 열망, 군부정권 타도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땀과 피를 흘리며 싸웠다. 사회적인 혼란시기에 그들은 살아왔고, 그 가운데에서 낭만을 찾았다.
  유행이 돌고 돌 듯, 사회적 풍조도 돌고 돈다고 생각한다. 과거 대학생들과 청춘들을 중심으로 했던 낭만은 현재에도 욜로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현재의 자신의 행복과 삶의 질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모아놓은 목돈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행 아닌 유행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낭만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는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현 시대의 풍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에게 큰 피로를 항상 가져왔다. 하지만 이제 청춘들이여, 욜로 하자. 한번 뿐인 인생 진정 행복한 청춘을 즐기기 위해, 낭만적인 대학생이 되자. 남들이 아닌 우리를 위해서. 
주찬식(정치외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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