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구역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든 불안했다.  

  나는 달걀이 묻은 살충제를 먹고, 달마다 생리대 역할을 하는 발암물질을 찬다. 나는 매일 내 존재를 혐오 당한다. “여자는~” 으로 시작하는 부장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늦은 밤 귀가할 때 숨죽여 주변을 경계한다. 봉고차가 지나가면 이전에 배운 자기방어기술을 머릿 속으로 복습한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은 대뜸 내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묻는다.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혹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른 모든 가능성을 삭제하는 질문이다. 없다고 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무슨 자랑 이라고”였다. 주둥아리 다물라고 쏘아 붙여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을 이후로 피하게 되었다.
 

숨막히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자,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이 곁에 남았다.

  BOSHU 잡지 회의를 하러 가는 날이면 피곤한 몸이 집으로 가자고 재촉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회의 장소에 간다. 적어도 불편한 이야기가 나오면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룹이니까.  나는 대흥동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오래된 도심에서 알게 된 그들과 몇 년을 알고 지냈어도 헷갈리는 게 있다. 그들이 몇 살인지,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물어봤는지 아닌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그들의 나이를 몰라도, 그들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지,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면 행복해하는지 알고 있다. 

  느끼는 데에 지치는 순간이 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상상하곤 한다. 여성혐오가 공기처럼 만연한 걸 몰랐더라면, 누구나 존재만으로 존중 받는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몰랐더라면. 일상생활 을 해내기도 어렵다고 느낄 때, 다 포기하고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말, 시선이 날 무차별적으로 찔러대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어떻게 멀쩡한 거예요. 사방에서 저를 찔러대는데. 아프지 않으세요?

  내 삶의 영역은 분명하게 둘로 나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느끼는 영역과 감각을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영역. 오늘도 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숨을 참고, 저녁에 숨을 쉬러 대흥동으로, 보슈를 만들러 간다. / BOSHU 에디터 김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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