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고민도 좋지만,

 

  글을 쓸 때면, 읽기 쉽고 마음이 잘 전달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읽어본 글이 많지도 않고 써본 글도 많지 않은 내가 그런 훌륭한 글을 쓸 리 만무했지만, 단어를 추궁하지 않아도 생각과 느낌이 절묘하게 관통해올 때가 있다. 늘 그런 표현을 하며, 글을 쓰고 싶지만 공공연히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친다. 너무 고민한 탓일까. 생각의 골도 깊어지면 소리가 세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하고 싶었던 말이 안에서만 울리고 그친다. 차라리 정제되지 않은 첫 생각이 속 시원히 터져 나오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퇴고할 때 즈음엔 오히려 돌고 돌아 길을 잃은 거 같다.

  때로는 의식이 흐르는 그대로 쓴 글들이 오히려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이해하기도 쉽다. 스치듯 찾아온 생각들이 때로는 나를 더 자유롭게 하듯. 학교 신문에 글을 올리게 된 이번에도 셀 수 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끝내 만족하지 못하고 마감을 얼마 안 남긴 상태에서 싹 다 지워버리고, 내 마음을 처음부터 다시 휘갈겨 내렸다.
  내가 남자로서,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도 의심이 들었다. 일단 난 남자가 맞는가, 여자 혹은 제3의 성은 아닌가, 단순히 여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건 확실한가.

  이 역시 너무 깊이 고민했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남자였다. 남자로서의 내가 좋지, 여자로서의 나는 도무지 와 닿지 않았고 1m 앞의 여자보다 100m 앞의 남자에게 늘 시선이 먼저 갔다. 내 친구는 여자의 곡선이 참 아름답다고 했지만 난 남자의 직선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어떤 여성과 형식적 데이트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감당키 어려웠다. 반면 남성과의 데이트는 상상만으로 즐거웠다. 그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이상이 궁금하면 RAVE로 연락주시길.)

  정말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단순히 생각하니 쉽게 답이 나왔다. 고민을 멈추고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그림자처럼 뒤좇던 불안과 걱정은 오전 11시 50분의 강의실처럼 고요해졌다. 여태 너무 많은 것들을 따지며 고민하다가 25년씩이나 돌고, 고민에 얽매여 엉키고 해답에서 가장 멀어지게 한 것 같다. 한편으로 그 숱한 고민 끝에 가까운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과하게 돌고 돌아서 도착했단 생각이 더 컸다. 나를 혹사시키는 것은 그만두고 가볍게 굴어 보는 것, 답은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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