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무주

성진우 기자

  시골과 도시의 경계를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꼭 시골과 도시를 명확히 구분하려 하는 것 같다. 시골을 좋아하면 낭만과 함께 어리숙함을 떠올리고, 도시를 좋아하면 현대적 감각과 차가운 인상을 머릿속에 그려낸다. 그래서 기자는 시골과 도시 사이에서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정답은 무주에 있다.  무주에 들릴 때면, 놀러온 분위기를 내기 위해 꼭 무주나 금산농협에서 고기를 사간다. 아버지는 부남 방면 국도에서 시골길로 차를 튼다. 그리고 경사가 있는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서행한다. 1분 이면 무주에 있는 우리 가족들의 작은 보금자리가 보인다. 내부 공사를 마친 컨테이너 박스와 텃밭이 바로 그것이다. 고추와 깻잎이 항상 싱싱하고 빽빽하게 나있다.  아버지가 텃밭과 주변을 둘러볼 때면 기자는 접이식 의자를 펴고 앉아 무주의 하늘을 바라본다. 무주의 하늘은 더 높고 넓은 것 같다. 마치 높은 산 위에서 초원을 가득 채운 양떼를 보듯 무주의 하늘은 흰 구름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품고 있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전체 하늘을 여유롭게 보다보면 웬 고가도로가 시야에 걸린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일부다. 그 위를 많은 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리고 있다. ‘언밸런스’해 보이지만 이 또한 무주의 매력이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는 삼촌이 직접 만든 작은 화로가 있다. 다 쓴 가스통을 반으로 가르고 스프레이로 색도 냈다. 철심 세 개로 다리까지 만들어서 시제품으로 나오는 바비큐 그릴 못지않다. 이 화로에 숯불을 펴 고기를 구워먹는다. 그러나 숯불을 만드는 작업이 쉽지가 않다. 번개탄을 이용해 제대로 숯불을 만들어야 타지 않고 알맞게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데 아버지나 기자나 이런 쪽에는 영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토치로 계속 불을 지펴 봐도 숯이 팡팡 터지며 튀어오를 뿐 불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 배에서 허기진 소리가 날 때 쯤, 결국 아버지는 비참한 표정으로 슬쩍 브루스타(가스 버너)를 꺼내오셨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끝내니 무주의 밤이 찾아 왔다. 한적한 산 속, 뒷집에는 노부부 한 쌍이 살고, 앞집은 주인이 주말에만 가끔 찾아와 밤이면 적막하다. 아버지는 요즘 학교생활이나 건강 상태 에 대해 물어보신다. “어떻게 집안사람들 아무도 혈압이 없는 데 너만 혈압이 있지?” “저도 잘 모 르겠어요.” “학점은 이제 잘 챙겨?” “학점 신경 쓰느라 혈압이 더 올랐어요.” 부자 간 대화 사이를 메우는 날벌레 소리가 정겹다. 산골의 깊은 밤, 아 버지와 랜턴 조명을 바라보고 있으니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때마침 멀리서 맥없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시킨 치킨과 맥주였다. 기자는 아버지와 함께 꿈같은 한 여름 밤에 취했다.    우리는 항상 애매한 경계에 서서 한쪽으로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작용한다. 시험지의 OX 문제, 이공계열과 문과계열 중 진로 선택의 문제, 심지어 도시와 시골 중 어느 곳이 더 좋은지에 답하는 일상적인 취향의 문제에서도 선택의 강박이 존재한다. 무주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의 삶은 칼로 자른 듯 양분될 수 없기에 반드시 한쪽을 선택해야 한 다는 강박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메시지다.  기자는 지난 2년 간 총 23개의 신문을 내며 정 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많은 글을 쓰고, 또 많이 읽어왔다. 때문에 사회를 적과 동지, 보수와 진보로 나눠 보는 것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한 여름 밤 무주에서의 경험을 마지막 기자수첩에 담으며, 이젠 그런 시각과도 이별하고자 한다. 또한 정들었던 충대신문의 동료 기자들과 독자들 모두 각자 자기만의 ‘무주’를 찾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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