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찾아가 본 '암마을' 사관리

  몇 년 전 큰 이슈가 됐던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국민들이 송전탑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송전탑 설치 반대운동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충대신문도 ‘보이지 않는 그 곳, 청도 삼평리(2014년 09월 02일 제1085호)’ 기사를 통해 청도의 송전탑 사례를 소개하며 학우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우리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당진 또한 송전탑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진은 경주, 포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송전탑이 설치된 지역이다. 특히 당진에서도 가장 많은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 사관리 주민들은 각종 암에 시달리는 등 그 피해가 극심하다. 기자가 직접 사관리를 찾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가 찾아간
‘암마을’ 사관리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는 당진 버스터미널에서 약 50분 간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주민들은 배추를 수확해 트럭에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옆에선 아주머니들이 김장을 하고 동네 어르신들은 마을 회관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처럼 사관리는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민들 뒤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송전탑들은 왜 사관리가 ‘암마을’로 불리는 지를 설명하는 듯 했다. 1997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당진 내에 위치한 6개의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 등지로 보내기 위해 당진시에 526개, 그 중 사관리에만 26개의 송전탑을 설치했다.
  당시 송전탑이 야기할 피해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했던 때라 주민들은 송전탑 설치에 동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관리 주민들에게서 송전탑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민들의 건강이다. 사관리 내에서도 송전선이 지나가는 마을회관 뒤쪽 지역의 50세 이상 연령층에서 다른 지역보다 간암·위암 환자가 더 많이 발생했다. 결국 주민 6명 중 1명꼴로 암이 발생하는 셈이다. 반면, 송전탑과 멀어질수록 환자의 비율은 감소한다.
  주민들은 타지인의 방문에 낯설어하지 않았다. 길에 서있는 기자에게 “무슨 일이냐”며 주민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송전탑 피해자를 찾는다는 말에 그는 “아무나 붙잡아도 다 피해자”라며 인터뷰를 승낙했다.
  사관리 주민 이병학 씨는 “송전탑을 건설할 당시에는 아무런 신체적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보니 점점 그 변화가 느껴진다”며 “마을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있고, 특히 암이나 백혈병에 걸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유독 사관리에 병 걸리는 사람이 많고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관리의 지가 또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병학 씨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지가가 떨어져 땅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며 자신의 난감한 처지를 토로했다. 실제로 충남연구원은 2014년 조사를 통해 사관리를 포함해 송전선로가 깔린 당진시 일대의 지가 하락 금액이 1137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안장환 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마을회관 뒤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길의 제일 끝, 송전탑의 바로 앞에 마당을 끼고 있는 집이 한 채 있다. 안 씨의 집이다. 안 씨 소유의 밭에는 배추와 고추가 재배되고 있었다. 배추가 심겨져 있는 고랑 바로 뒤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서있어 이질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2006년, 안장환 씨는 직장을 퇴직하고 아내·어머니와 함께 고향 사관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송전탑 바로 밑에 있는 밭에 자주 나가있던 안 씨의 아내·어머니가 암에 걸렸고, 어머니는 5년 전 돌아가셨다. 안장환 씨는 “아내는 현재 뇌암으로 투병 중이다. 집안사람들 모두 집 울타리 바로 너머에 있는 765kV 송전탑 때문에 암이 발병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안 씨의 아내는 딸집에서 거주하고, 사관리 집에는 안 씨가 혼자 살고 있다. 안 씨는 아내·어머니가 가꾸던 밭에서 밭일을 한다. 안 씨는 “특히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송전탑에서 우는 소리 같은 게 난다. 한 번은 불안한 마음에 밭에서 집으로 뛰어 들어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안 씨는 “낙뢰를 맞으면 전자제품이 망가지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는 전자제품을 쓰지 못한다. 평소에도 전자제품의 코드를 다 빼놔야 한다”며 송전탑으로 인해 겪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기자들에게 대접해 줄 커피를 타는 안씨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송전탑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에게도 피해를 야기했다. 소를 키웠던 주민 최기정 씨는 “송전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소가 가만히 있질 못했다. 결국 소가 계속 새끼를 낳지 못해  그 이후로는 소를 키우지 않는다”고 말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돈이면 다 해결?…
주민들은 ‘이주’를 원한다


  ‘송·변전 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송주법)’에 따라, 한전은 765kV 송전선로 주변 33m, 345kV 송전선로 주변 13m 인근 주민에 대해 자산 감정평가액의 30%를 보상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신설되는 송전탑에만 적용되고 기존 시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사관리의 경우 주택매수청구 등의 실질적인 보상에서 제외됐다.
  한전에서는 송주법에 따라 765kV, 345kV, 변전소가 지나는 사관리에 작년부터 가구당 50%씩 전기요금을 감면해주는 보상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1년에 가구당 120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마을발전비 명목으로 지급된 보상금은 사관리 명의의 공동 땅을 사는데 사용됐다.
  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주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병학 씨는 “우리는 보상금 받는 것을 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처음 설치할 때보다 송전탑이 수십 배 늘어났는데도 한전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등을 마련하지 않고, 금전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태학 씨도 “주민들에게 전기세를 50%씩 감면해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장환 씨는 “전기세 감면 차원의 보상 보다는 송전탑 인근에 살고 있는 18여 가구를 아랫마을로 이주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가 한전에 요구하는 보상”이라며 “사실 한전에서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법에 명시돼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송주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한전 측에 어떠한 보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으나 한전은 “내부 회의를 거쳐서 인터뷰에 응할지 여부를 결정 하겠다”며 사실상 답변을 유보했다.

사관리 주민들의 마지막 몸부림

  사관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함께하는 우리 농촌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색깔있는 마을’에 선정됐다. 이는 한전이 사관리 주민들의 이주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가 마을 이전을 위해 참여한 사업이다.
  ‘마을 발전 추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장환 씨는 “한전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이주를 해주지 않으니까 우리가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올해 사업안을 올리려고 한다”며 “사업안이 괜찮으면 40억 원 정도를 지원받는데 그 지원금으로 송전탑 인근 18여 가구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혼란스런 정국으로 인해 해당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다. 만약 해당 사업이 원안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사관리 이주 계획은 좌초될 위기에 놓인다.
  안장환 씨는 “‘색깔있는 마을’이 ‘창조 경제’를 표방한 이번 정부에서 하는 사업 중 일부였는데 요즘 정국이 혼란스러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현 정부의 상황을 봤을 때 제대로 예산 집행이 안 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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