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구설수 무엇이 문제인가

  족보의 사전적 정의는 가문과 혈통 관계를 정리한 책이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족보는 더 이상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통용되지 않는다. 극심한 취업난 속, ‘학점 강박증’에 시달리는 대학생은 학점 경쟁에서 이기고자하는 목적으로 족보를 찾는다. 암암리에 주고받으며 사고파는 것이 마치 현대의 정보전을 방불케 한다. 대학 내 족보의 형태를 정의하고 기저의 문제 파악을 통해 해결 방안을 알아보자.
 
정보의 시대 : 족보의 등장

  대학에서 ‘족보’는 일반적으로 해당 강의의 기출 문제를 정리한 자료집을 의미한다. 이 자료집은 인쇄물, 문서파일 등의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며, 보통 윗 학번에서부터 아래 학번으로 전달된다. 기출문제가 점차 누적돼 다음 학번으로 전달되는 형태가 족보의 특성과 같아 이를 족보라 부른다.
  족보는 과 선배와 동아리 등을 통해 전달되며 학우 간 사고팔기도 한다. 백마게시판과 같은 학내 커뮤니티에는 ‘OO과목 족보삽니다’라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인근의 KAIST를 비롯한 타 대학에서는 교내 복사실을 중심으로도 족보가 거래됨이 확인됐다.
  족보, 즉 기출문제는 출제 경향 파악에 도움이 되므로 효율적인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강의에서 지난 년도와 유사한 문제가 계속해 출제될 때, 족보는 매우 큰 효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익명을 요청한 A 학우는 “과 내 특정 교수님께서 문제를 2~3년 꼴로 거의 비슷하게 낸다. 재작년에 무슨 문제가 나왔는지만 알면 그 두꺼운 전공서에서 해당 부분만 달달 외우면 A+도 문제없는 셈”이라며 이런 공부의 옳음에 의문을 제기했다.

1068호 기사에도 불구하고 족보관련 게시글은 그 게시간격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분석대상 : 유어유니브 등 115개들 (2013년 11월 14일~2016년 10월 18일)

‘라인’만 잘 타면 족보도…

  A 학우는 해당 과목 특성상 “서적에서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서술은 어려우나, 나올 주제만 알고 보는 사람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라며 “연인이 고학번이거나 소위 줄만 잘서면 선배들이 족보를 개인적으로 주는 경우 공부를 평소 성실히 하지 않는 사람도 A+를 받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A 학우는 “경영학과 룸메이트를 뒀던 시절 동아리방에 족보가 놓여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며 “족보가 존재한다면 차라리 그렇게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족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또 공대로 전과한 B 학우는 “공대는 실험실을 중심으로 족보가 공유되기도 한다”며 족보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속앓이를 토로했다.
  그 외에도 C학우는 “학점이라는 것은 자신이 공부해서 얻어가는 것”이라며 “정보력과 인맥으로 족보를 구해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대학교육의 의의를 학문의 진리 탐구라 본다면 족보는 문제다”라고 말한 학우도 있었다.

족보에 대한 교수의 입장을 듣다

  학내 커뮤니티 ‘유어유니브’의 족보 관련 글을 분석한 결과, 그 중 약 절반이 천문교양 (천문학의 지혜, 우주의 역사, 인간과 우주)와 관련돼 있었다.
  이에 대해 해당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천문우주과학과 김광태 교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스크린캡처 등의 형태로 족보의 존재를 제보하고 있다”며 각 과목의 족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을 밝혔다. 김 교수는 “기존에도 문제를 변형해왔으나, 올해 2학기는 기존의 문제를 전부 폐기하고 처음부터 재출제했다”며 족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존까지의 기출문제는 겨울방학동안 조교와 정리해 수강생에게 공개하려고 한다. 족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26년간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교양 강의를 맡아왔지만, 강사 수급 등 문제로 현재는 사이버강의로 전환했다”며 “대형 교양강의에 대해 시험지원 등이 대학 본부 차원에서 원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OO과목도 족보도 있나요?

  족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족보를 구하기 쉽지 않은 학우는 수강신청 단계에서 족보가 있다고 알려진 교과목의 수강을 기피한다. 학내 커뮤니티에서도 ‘OO과목 족보 도나요?’ 혹은 ‘족보 없는 강의 추천해주세요’ 등의 글이 게시된다.
  중앙대학교는 강의계획서 항목에 기출문제 공개여부를 2011년 봄 학기부터 포함시켰다. 중앙대 교학지원팀 담당자는 “족보로 인한 문제들이 불거지자 총학생회 차원에서의 요구가 있었고 그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항목 추가 배경에 대해 말했다. 대학본부 담당자는 “우리 학교의 경우는 아직 이런 논의는 없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족보 문제 근본적 해결 방안은?

  족보 문제는 기존에도 끊임없이 제기됐으며, 본지 1068호에서 ‘불만백서’라는 기사에서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족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기사 보도 이후, 학내 커뮤니티 ‘유어유니브’와 ‘충남대학교 대나무숲’에 게시된 총 165개의 글은 그 게시 간격이 점차 짧아졌다. 게시글은 해당과목이 족보 있는 강의인지를 묻는 글과 족보와 관련된 경험을 말하며 부당함을 토로하는 글이 대다수였다. 족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문제만 심화됐다는 것이다.
  족보가 아무리 다음 시험과 밀접히 관련됐더라도 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족보를 구하는데 학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족보를 공개하는 것도 일시적 문제 해결 방안이 된다. 우리학교 역시 일부 교과목은 과년도 기출문제를 시험기간에 제공하고 있으며, 카이스트 수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의 경우 학과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기출문제를 게시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족보 공개는 일시적 해결방안이기에,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먼저 족보의 존재가 힘을 가지게 된 계기를 심층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학점에 대한 경쟁 심화가 족보에 힘을 실어 줬고, 극심한 취업난이 학점에 대한 경쟁을 심화시켰다. 따라서 족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대학가에 산재된 여러 쟁점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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