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병철이 전하는 피.로.사.회

  한병철은 한국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서 문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이다. 문·이과를 함께 공부하고 우리 사회를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시선이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은 독일에서 출간 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독일에서는 ‘피로사회’라는 단어가 상용어가 되었다. 이 결과는 무엇보다도 이 책이 소진증후군,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과 같은 정신 질환의 역사적 위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우리 시대에 신경증적이 있다고 지적한다. 신경성 질환들 즉,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로 가득한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장애를 오늘날 성과사회의 근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는데 21세기 사회는 성과주의 사회로 변화한 것에 주목한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 그는 타자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타자로부터의 자유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된다.

 즉 저자는 이 패러다임 변환 과정에서 우울증이 발생하고 성과의 주체인 우리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된다는 구도를 만든다고 본다. 특히 성과사회의 주체인 우리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다.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와 개인의 이상이 오늘날 세계에서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요구라면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이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따름이라 한다. 이것은 착취의 진화인 것이다.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저자는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을 것이다. 성공한 인생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 책은 사회의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회 구성원 스스로 각성하고 욕심을 버리고 타인을 되돌아보는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저명한 학자가 병명을 진단했다. 하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지 않는 이상 치료는 쉽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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