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대전 ‘백로 유인 서식지’ 설치, 실패했지만 상생의 가능성 엿봐

 

▲ 대전시가 1월부터 4월까지 설치했던 월평공원 인근 백로 유인서식지. 정교한 백로 모형이 눈에 띈다. 사진 대전시청 제공

 

 

▲ 백로 유인서식지 바로 옆에 흐르는 갑천. 백로는 먹이가 풍부한 하천 인근에 서식하는 특성이 있다.

 전국 최초로 설치된 월평공원 ‘백로유인잠재서식지’란?
 지난 1월 21일, 갑천변에 위치한 ‘월평공원’에 왜가리, 쇠백로 등 백로 모형 20여 개와 둥지 모형 5개가 설치됐다. 또한 백로의 울음소리를 재현한 음향시설도 등장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대전시가 시민과 백로의 공존을 위해 추진중인 백로류 유인사업의 일환으로 시도된 전국 최초의 ‘백로 유인 잠재서식지(일명 백로 유인서식지)’다.
 월평공원의 백로 서식지는 서구 기성동 인근 야산과 남선공원 일대에 서식 중인 약 1000여 마리의 백로를 유인하기 위해 조성됐다. 대전시는 대전발전연구원과 한국환경생태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월평 공원이 백로 서식지로써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백로는 먹이가 풍부하고, 하천과 가까우며, 수리부엉이나 황조롱이 등 맹금류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유리한 주택가 도심공원에서 번식하는 경향이 있다. 월평공원은 도심과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있으면서 갑천변에 위치해 해당 조건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한밭(大田)’이라는 고유지명을 지닌 지역답게 대전에는 백로가 많이 서식한다. 우리도 과거 궁동 근린공원과 우리 학교 도서관 뒤에서 백로를 쉽게 마주쳤다. 백로는 논밭의 벌레를 잡아먹는 순기능도 하지만 시민들에게 여러 불편을 준다. 때문에 대전시는 백로와 시민의 상생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방안으로 도출된 것이 바로 월평공원 ‘백로 유인 잠재서식지’다. 백로 서식지가 설치되고 실패하기까지의 과정, 백로들이 대전 지역에 지니는 의미를 알아본다.

 벌목을 통한 ‘백로와의 전쟁’…환경단체 반대에 직면해
 대전 지역의 백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성구 카이스트 내 어은동산에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개체수가 500여 쌍까지 불어나자 유성구청은 어은동산의 나무 솎아베기와 고사목 벌목으로 백로를 내쫓는다. 그렇게 한동안 자취를 감춘 백로떼는 2013년에 우리 학교 인근 궁동근린공원에 다시 나타난다. 결국 새로운 서식지에서 지속적으로 번식한 백로떼는 인근 시민들에게 소음과 배설물에 의한 악취 등 피해를 끼쳤다. 유성구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같은 해 가을에 궁동근린공원 녹지 가지치기 작업을 감행했다. 백로는 다시 서식지를 잃고 대전 전 지역을 떠돌았다.
 현재 백로는 서구 기성동 일대와 탄방동 남선공원에 자리 잡았다.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소음으로 인한 불면과 깃털 및 배설물로 인한 차량 파손, 악취 등을 호소했다. 실제로 2014년 7월, 남선공원 이용객 383명이 서구청에 집단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다. 특히 백로들이 둥지를 트는 초봄 즈음이면 시민들이 입는 피해는 더욱 컸다. 작년 초 까지 탄방동 남선공원 인근의 한 아파트에 거주한 권정일(42·관저동) 씨는 “백로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시기가 여름과 겹쳐 특히 악취가 심했다. 집이 공원에서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공원을 찾을 때마다 불쾌한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악취 제거를 위해 탈취제를 정기적으로 살포하던 서구청은 결국 남선공원 소나무숲의 벌목 계획을 세웠다. 이때 벌목 계획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백로들을 내쫓는 데 가장 효과적인 시기로 꼽히는, 백로 새끼들이 이소(둥지를 떠나는 일)하지 않은 8월 초에 벌목 계획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벌목 계획은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의 강한 문제제기로 인해 서구청은 벌목 계획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은 “벌목은 결코 대전의 백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으므로 반대했다”며 “벌목은 생태계의 교란을 일으키는 행위로써 2차, 3차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숲에 사는 벌레나 풀들이 사라지면 생태계의 기본적인 체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경호 국장은 “무분별한 벌목은 산사태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 남선공원은 경사가 져있기 때문에 벌목이 대규모로 시행될 시 산사태가 우려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또한 백로를 내쫓기 위한 벌목은 대전시 전 지역이 백로떼를 두고 ‘폭탄 돌리기’하는 격이라는 지적도 일었다. 대전 도시개발이 녹지들을 섬처럼 남아있게 해 백로들은 한정된 지역에서 서식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경호 국장은 “백로가 번식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인데, 단순히 서식처를 없애면 또 대전 어느 지역에 백로가 집단 서식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는 해당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떠넘기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남선공원에서 백로들을 쫓아내면 이와 비슷한 지역인 보문산 등에 다시 백로떼가 모여들 가능성이 크다.

 백로 서식지는 실패, 그러나 상생과 공존의 노력 이어져
 결국 서구청 환경과는 백로 새끼들의 대량학살이 우려되는 기존 벌목 시기를 조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전시민과 백로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대책 방안이 활발히 논의됐다. 대전시와 대전발전연구원은 각종 연구를 바탕으로 대전지역 백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백로류 관리방안’을 수립했다. 올해 1월 설치된 월평공원 백로 유인 서식지 또한 해당 정책의 일환이다. 이에 대해 대전시청 환경정책과 오병남 과장은 “벌목을 통해 백로떼를 쫓아내도 도심속 백로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다. 때문에 시는 백로와 시민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시작한 것”이라며 “그러한 노력이 월평공원 백로 유인 서식지 설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대전시는 대전발전연구원과 함께 백로들에게 무선추적발생기를 달아 백로의 이동경로, 습성 등을 면밀히 파악했다. 또한 이화여대 조형미술학과에 의뢰해 백로들이 오해하고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제작된 백로·둥지 모형도 월평공원에 설치했다.
 그러나 현재 백로 유인 서식지에 둥지를 튼 백로는 단 한 마리도 없다. 백로들이 보통 2월에 둥지를 튼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백로 유인 서식지 정책이 실패한 셈이다. 이에 대해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은 “대전시의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에 벌목 등으로 인해 백로가 대전 각 지역과 외부 지역으로 흩어져 유인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산에 대한 한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정확한 원인은 정밀 분석이 끝나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정책과 오병남 과장은 “서식지에 백로가 정착하지 않은 정확한 원인에 대해선 올해 12월까지 있을 연구 용역을 통해 알 수 있다”며 “다만 이번 백로 서식지는 시에서 추진한 백로류 관리 정책 중 일부다. 다행히 시에서 2월부터 주택가에 한해 백로의 서식 방해활동을 했기 때문에 올해 주택가 근처의 피해는 당장 최소화시켰다”고 말했다.

 ‘생태계의 지표‘인 백로, 이제 대전의 친환경 랜드마크로
 백로는 생태계의 지표로 활용되는 새다. 이는 먹이가 풍부한 하천 인근에만 서식하는 백로의 특성 때문이다. 즉, 대전에 백로의 대규모 집단 서식지가 형성됐다는 것은 그만큼 대전의 생태적 건강성이 높다는 의미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은 “모든 생물은 생태계 피라미드에 속해 있다. 백로는 물고기 혹은 뱀에 대한 수요조정능력을 지녀 생태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며 “대전 지역에 백로가 많이 모이는 것은 그만큼 도심 속 생태계가 잘 보전됐다는 것이므로 시민과 백로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전시는 백로와 시민의 상생을 이끄는 새로운 백로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백로가 대전의 친환경 랜드마크로 부각된다면 생태환경 속 대전 시민의 삶의 질이 향상됨은 물론이고, 백로를 문화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대전시청 환경정책과 오병남 과장은 “대전시는 대전을 시민과 백로가 더불어 살면서 함께 상생하는 생태도시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올해 백로 유인 서식지의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연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음 정책 방안을 구상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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