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노동·일상생활 차별…비대학생 청년에게 듣는 ‘고군분투 사(史)‘

 

▲ 비대학생 청년 이덕희 씨가 일하는 고깃집. 새벽 1시에도 그는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남성이 길을 걷다가 지갑을 떨어뜨린다. 그러자 뒤에서 걷던 아주머니가 지갑을 주워 “학생! 지갑 떨어뜨렸어”라고 소리친다. 남성은 아주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지갑을 받아 유유히 가던 길을 간다.
  일상적으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이 일화에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오류가 숨어있다. 우리는 왜 남성이 ‘학생’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청년 중 32%가 대학을 다니지 않는, 이른바 ‘비대학생 청년’들이다. ‘청년=대학생’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비대학생 청년들에게 그들 삶의 고충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①]  “대학 못가면 엠X인생”…일상적 모욕은 물론  임금차별도 겪어
 대전 지역의 한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A 씨(21)는 올해 초 고교 동창회에서 한 동창생과 심하게 다퉜다. 대학에 진학한 동창생이 A 씨가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을 두고 비꼬듯 한 말이 화근이 됐다. “요즘은 공고 나와서 대학까지 못가면 진짜 ‘엠X인생(막장인생)’이다”는 말에 A 씨는 격분했다. 다행히 주먹다짐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A 씨와 동창생의 다툼으로 동창회 자리는 엉망이 됐다.
 이에 대해 A 씨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무시당했다. 물론 특성화고등학교에서도 최근에는 ‘폴리텍’처럼 더 심화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늘어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모욕을 들어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한 은행에 취업한 여성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처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먼저 취업을 선택하는 비대학생 청년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공고, 상고’와 같은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비대학생 청년들의 실상은 다르다. 대기업 자리는 한정적이고, 직장 내에서도 ‘기술직’이라는 측면 때문에 대학 졸업자와 비졸업자의 차별이 노골적이다.
 A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대전의 한 카센터에 취직했다. A씨는 “배운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장이 아버지의 지인이므로 더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때 ‘자동차과’를 졸업해 어느 정도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았다. 잡다한 업무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 봉급도 올라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줄 형편도 됐다. 부모님이 주시던 용돈도 작년 여름부터 일절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말, 전문대에서 자동차 학과를 전공한 신입 직원이 채용됐다. 신입 직원은 엔진오일 및 필터, 점화플러그 교체, 전화 예약 관리 등 A 씨와 동일한 잡무를, 동일한 근무시간에 수행했다. 그러나 봉급은 A 씨보다 더 많았다. A 씨는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사장에게 직접 불만을 표현하진 못했다. 같은 일을 더 오랜 시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고졸이라서 봉급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스스로가 초라해보였다”며 “한 달은 고민하다 결국 카센타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A 씨는 현재 취업과 대학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비대학생 청년은 취직 자체가 어려운 건 물론이고 취직이 되더라도 봉급, 태도, 인사 등에서 차별을 당하기 때문이다. A 씨는 “소규모 카센터를 제외하면 사실 취직도 어려운 상황이라 차라리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지 고민하고 있다”며 “더 이상 친구들, 부모님에게 무시당하는 말썽쟁이로 취급받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②] ‘아르바이트’만 주야장천, 비대학생 청년에게 ‘창업’은 사치?
 이덕희 씨(21)는 ‘청년 창업가’가 되겠다는 자부심이 낙담과 좌절로 바뀌었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1년 동안 대전의 한 사립대에서 ‘의료기기’ 학과를 다녔다. 그러나 그는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인 ‘쇼핑몰 창업’을 위해 과감하게 대학을 자퇴해 스스로 비대학생 청년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현재 그에게는 앞이 불투명한 미래만이 남았다. 어느 비대학생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당장의 생활을 위한 ‘알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덕희 씨는 “힘들게 진학했던 대학을 자퇴하자 격려보다 비난이 많았다. 나는 단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학교 수업이 맞지 않으니 자퇴한 것이다. 하지만 자퇴 후 1년 간 생활해보니 점점 꿈과는 멀어지는 걸 느껴 자퇴를 후회한 적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그는 한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생활비도 벌고, 창업 자금도 마련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 결국 그에게 족쇄가 됐다. 오후 4시에 출근해서 새벽 3시에 퇴근하는 일상 속에서 이덕희 씨는 매일 녹초가 된다. 자퇴 할 때 지녔던 목표에 대한 희망과 열의는 이미 식어버린 지 오래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현재 청년 창업 지원이나 창업과 관련된 교육은 대부분 대학생에 맞춰져 있다. 청년 창업 과정은 ‘대학’이라는 틀에서 얻어지는 인맥, 전공 분야 등의 인프라가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거나 자퇴한 청년들에게 창업이 사치처럼 여겨진다. 비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창업이 힘든 현재 상황에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대학생 청년들은 ‘창업 동아리’, ‘창업 교육’ 등을 제공받는 대학생에 비해 체계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정보 접근에 한계를 겪는다. 또한 금융권에서 내놓은 ‘청년창업대출’도 대학생을 조건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창업을 계획하는 비대학생 청년들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스스로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이덕희 씨도 창업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찾아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일반 대출은 애초에 자격 미달이고, 그 외에 창업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은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그는 “기업에서 진행하는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 같이 창업 지원금을 주는 공모전도 그 조건이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이다”라며 “대학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밖에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곧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계획이다. 강한 노동 강도로 봉급은 상대적으로 높다지만 창업을 시작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액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돈’보다는 ‘경험’을 쌓기로 결심했다. 6월로 예정된 군대를 연기하고,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 할 예정이다. 이덕희 씨는 “알바 시간이 개인적으로 뭔가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빠듯하다. 이러다가는 계획과 목표 없이 평생 이대로 살 것 같았다”며 “다시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당장의 돈보다는 경험을 쌓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③] 차별과 불편한 시선…
 ‘최고가 되려는 노력’으로 극복
 정종근 씨(21)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뒤늦게 ‘미용’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미용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느꼈다. 모든 예비 수험생들이 학업에 매진하는 고등학교 3학년 봄방학, 정 씨는 고등학교를 과감하게 자퇴했다. 그리고 충남 논산을 떠나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 생활은 갓 학교를 벗어난 그에게 녹록치 않았다. 본가에서의 지원도 부모님께 죄송해 일절 받지 않았고, 서울에 단 한 명의 지인도 없었다. 정종근 씨는 “서울에 올라와 혼자 고시텔에서 지냈다. 그리고 강남의 대형숍에서 처음으로 미용 관련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후 제대로 취미 생활을 가져본 적이 없다. 중졸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고 싶어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헤어숍에서 일하면서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종근 씨에게 꼬리표가 됐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멸시가 그를 괴롭혔다. 정 씨는 “대형숍의 미용사들도 중졸이라는 이유로 어느 선 이상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손님들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하고 있다고 하면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런 상황이 매우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비대학생 청년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꿈을 이루겠다며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명절 때를 제외하고 본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정종근 씨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게 마치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집안 어른들은 항상 걱정해주는 마음이겠지만 그 시선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라며 “미용 자격증과 면허증을 취득하고 나서 비로소 본가를 떳떳이 내려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학원에서 미용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단지 여러 헤어숍에서 일하며 미용사들의 작업을 지켜보거나, 현장에서 즉석으로 배우는 부분들에 의존해 미용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정종근 씨는 오로지 독학으로 미용 자격증과 면허증을 취득했다. 또한 미용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강점인 ‘컬러(염색)’ 계통으로 강의도 했다.
 이밖에도 정종근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미용 관련 자료를 꾸준히 게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어는 현재 만 명이 넘는다. 그는 이른바 ‘페북 스타’로도 웹상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종근 씨는 “꼭 대학에 가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중졸인 나에게 미용과 관련한 조언을 듣는다”며 “비대학생이라고 해서 ‘교육 현장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대학 진학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비대학생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내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차별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종근 씨는 “같이 일하는 분들 나이가 26~28세다. 그런데 나는 이제 21세”라며 “대학 진학의 목적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므로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비대학생 청년들은 아직도 사회적 차별과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청년 사회가 대학 진학 여부를 두고 분절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생과 비대학생 모두 각자 직면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편견과 차별을 지양하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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