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잠을 못 잘 정도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번쯤은 더빙 영화를 보면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굴까하고 궁금해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빅히어로의 히로,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에코,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플래시의 한국어 더빙 목소리를 궁금해 한 적이 있는가? 여기 그 목소리의 주인공, 매력적인 목소리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진 심규혁 (불어불문학과. 00학번) 선배를 만나봤다.

 Q. 성우라는 직업을 소개하자면?
 성우라는 직업을 정의하자면,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등 방송물이 만들어지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더빙이나 사후작업에 들어가는 목소리를 넣는 직업이다. 다큐멘터리에 나레이션을 넣거나,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거나 CF에 멘트를 하는 작업이나 촬영 시 제대로 녹음되지 않거나 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에 목소리를 입히는 작업 등을 한다.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 실제 배우 목소리를 성우가 연기해서 넣는 경우도 있다.
 흔히 성우가 성대모사나 목소리에 치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성우도 연기자다. 영화배우나 연극배우처럼 오디오 컨텐츠를 연기하는 사람이다. 성우 시험을 볼 때도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연기다. 그래서 성우 시험 대부분이 설정이나 상황을 주고 연기를 하라고 시킨다.

Q. 그럼 입사할 때 어떻게 입사했나?
 다들 잘 아는 서유리 성우가 대원방송 성우 1기이고 내가 2기다. 입사할 때 총 5번의 시험을 봤다. 1기 때는 4번의 시험을 봤는데 내가 입사할 때는 한 회가 늘어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슈퍼스타 K나 웬만한 시험들 못지않게 어렵고 준비를 많이 했다.
 시험 중에는 대본을 직접 만들어서 상황을 주고 연기를 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한 장면을 따서 모든 역할의 연기를 직접 하고,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이어지는 방송 광고도 직접 하고, 광고 후에 라디오 코너를 이어서 연기 하고, 라디오가 끝나고는 파워레인저 시리즈 오프닝 곡까지 혼자서 녹음을 해서 제출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Q. 성우를 하면서 힘들었던 일은?
 딱 꼬집어서 어떤 작품이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시기적으로는 프리랜서가 된 직후가 굉장히 힘들었다. 우리 방송국의 경우에는 2년 전속계약을 맺고 그 이후에는 프리랜서가 돼 활동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처음 회사에서 나오게 되다보니 막막하던 차에 운좋게 오디션이 하나 들어왔다. EBS에서 방영을 앞둔 피터팬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었는데, 원래 전속된 회사에서는 300살 할아버지나 300KG 돼지같은 단역만 하다가 피터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굉장히 들떴고,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봤더니 반응이 안 좋았다. 프리랜서가 되고 첫 오디션이라 조언을 구했더니 기술 감독님 등 많은 분들이 정말 신랄한 지적을 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굉장히 좌절감이 들었던 적이 있다.

Q. 역할에 들어가기 전 특별하게 준비를 따로 하는가?
 성우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역할에 들어가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한다. 예를 들어 언어의 정원에서 타키오 역을 할 때는 첫사랑을 할때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휴면 계정으로 되어 있는 다음 메일에 들어가서 대학교 때 짝사랑하던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보면서 그 때 감정을 살렸다. 또 역할을 하면서 특별한 건 최근에 주토피아 플래시 역을 할 때 안그래도 영어 입모양에 한국어로 말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나무늘보라 말투가 너무 느려 감독님과 답답해서 죽을 뻔 했던 적도 있다.
 
Q. 성우라는 직업을 준비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성우는 어떻게 꿈꾸게 됐나? 성우를 준비하면서 어떤 일들을 했나?
 고등학교 때까지 장래희망은 성우가 아니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해 작가가 꿈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서울 백일장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나보다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주변에서 작가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을 포기했다. 그러던 중에 대학에 들어와서 호기심에 학교 방송국에 들어갔다. 방송국에 들어가서 아나운서를 했다.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다들 목소리 연기를 하면 잘한다고 해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성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때 굉장히 신기했던 경험이 있다. 작가들이 작품 준비를 하면서 굶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섭고 힘들게 느껴졌는데, 브레드피트가 신문 배달을 하며 배우 준비를 한 것처럼 배우나 성우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성우가 내가 가진 진정한 적성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성우를 준비한 건 대학교 때까지 합쳐서 9년여 정도다. 대학 때도 혼자서 책을 소리 내서 읽고 방송국이나 학교 과제로 나레이션이나 더빙을 맡을 일 있으면 내가 꼭 했다. 그렇게 대학에 다니면서 준비를 하다가 시험을 봤는데 도저히 지방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무작정 올라왔다.
 부모님이 성우 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돈 한푼도 없이 친구 집에 얹혀 살았다. 그러다가 겨우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그 당시 가장 큰 방송사인 KBS 옆에 집을 얻었다. 그리고 KBS 주변 성우학원에 등록을 하고, 성우 학원 주변 샌드위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성우 준비를 했다. 성우 준비를 하면서 지역구 라디오에 지원서를 넣어 지역구 라디오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시각장애인 도서관에서 낭독 봉사를 한 적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도전하면서 노력했다.

Q. 다양한 도전이나 경험에 거침이 없으신 것 같다. 어떤 도전을 했나?
 빅히어로를 같이 했던 여자 더빙감독님이 있다. 그 분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성우를 구할 때 원래 내가 물망에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너무 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말해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내 목소리에 대해 감독님이 알게 됐고, 터보라는 작품 주인공 역을 맡게 됐다. 원래 그 영화의 할머니 역할이었는데, 이례적으로 원작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1차 오디션 후 주인공 물망에 올랐던 성우들을 다 거절해 나에게까지 기회가 오게 됐다.
 대학교 때는 군대 가기 전에 항공연구원에서 자료정리 업무 아르바이트를 해보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자료정리 업무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인공위성 발사체와 관련된 업무를 맡은 적도 있다. 또 학교 방송국 선배가 소개해줘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인터넷 검색 아르바이트도 한 적이 있다. 일종의 공무원 생활 간접체험이었다. 그런데 그런 규칙적인 업무를 해보니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처럼 도전을 하다보면 어떻게든 내가 할 일이 생기고 기회가 생기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Q. 앞으로 성우로서 목표나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예전에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노년계획도 이것저것 세우고, 하다못해 재테크 계획까지 세운 적도 있다. 성우를 못하게 되면 방과후 논술 교사라도 해야하나? 같은 이런 저런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리 생각을 하다보니 고민이 많아지고 걱정도 많아지더라. 그래서 마음먹은 게 그때그때 집중해야 될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리 준비를 해놓아야하는 부분이 있지만, 지나치게 비약적으로 걱정과 고민을 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인생의 목표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것이다.
 성우로서의 목표는 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영화를 못보게 해서 TV로 외화를 접했는데, 외화 더빙 목소리를 듣고 잠을 못잔 적이 있다. 똑같은 말인데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어떻게 사람 목소리가 악기처럼 단련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중에 나도 성우가 되면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잠을 못 잘 정도로 매력을 느낄 수 있길 바랐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궁금해 하고 감명 깊어 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팬레터나 블로그의 글로 감명 깊었다고 이야기하거나 주토피아 플래시 연기를 듣고 나를 찾아봤다고 말하는 걸 보고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생활에 잠깐의 즐거움을 주고 성우라는 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성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꿈을 위해 노력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학생들에게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한마디 해주자면?
 굉장히 눈치도 많이 보고 어렸을 때부터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성격에 대한 아픔이 있다. 어릴 때도 부모님이 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해 부모님 눈치를 많이 봤었다. 그런 과정에서 오히려 나는 스스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처음에 성우라는 꿈을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다들 네 성격에 어떻게 성우를 하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싶었다. 행복의 기준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경험과 좌절을 모두 겪었다. 이처럼 끊임없이 경험을 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진정한 적성이라면 끊임없이 꿈꾸길 바란다. 그리고 그 꿈꾸는 과정에서 좌절했을 때 포기가 아니라 내가 이겨낼 수 있는지 없는 지를 파악하고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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