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차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 추모 및 기념 주간

 전태일, 장준하, 박종철, 이한열, 이철규, 강경대, 문익환, 노수석, 류재을, 김준배··· 그리고 이름없는 역사의 주인들. 권력과 부를 통해 알려진 이름과 얼굴이 아니다. 이들이 자주 · 민주 · 통일 그리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삼을 이뤄내고자 했던 시대의 순교자임을 역사의 발전 속에서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지 19년이 되었고, 광주시민을 총칼로 살육하고 집권한 전두환 · 노태우의 범죄 행위가 드러난 지금, 이러한 독재권력과 악덕 기업주에 맞서싸운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는 이 순간에도 그들에 의해 범법자로 낙인된 상태이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열사범추위)는 지난 14일부터 19일까지 ‘제3차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 추모 및 기념 주간’으로 정하고,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라는 간절한 호소로 선포식과 함께 적극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열사범추위는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회의, 국민 대토론회, 특별법 제정 촉구, 열사의 거리 문화제 등의 활동을 통해 이 문제를 전국민화 하고, 악법 개폐와 폭압 기구를 민주적 기관으로 재편해 나가는 등 사회 각 부분의 총제적 개혁을 촉구하는 일들을 진행했다.
 지난 14, 16일에는 각각 ‘조성만 거리 문화제’와 ‘전태일 거리에서 여는 고용보험 전면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결성식’이 있었다. 명동 입구에서 명동성당 앞까지는 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조국통일 앞당기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할복, 투신하여 운명한 조성만 열사를 기리는 ‘조성만 거리’, 청계3가에서 7가까지는 70년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근로기준법화형식을 거행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거리이다. 96년 부터 열사들이 운명한 장소나 연관이 깊은 거리를 선택하여 ‘열사의 거리’로 명명하고, 이후에는 문화제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열사의 거리는 열사들의 숭고한 뜻을 함양하며 대중적으로 명예회복을 하는 사업으로, 궁극적으로는 행정상의 거리 명칭까지도 바꾸어 내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정기국회 개원과 발맞춰 지난 1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는 열사범취위 이창복외 5명의 상임대표는 ‘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률’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청원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국현대사에서 분신, 할복, 투신 자결은 독재권력에 대한 최후의 항거였고 고문사, 기타 정치적 타살은 독재권력의 폭압성을 온 천하에 알리는 사건이었음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위를 진압하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전경 등은 국가유공자로 대우를 받지만 독재권력을 타도하고 민주헌정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다 운명한 민족민주인사들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아무런 추모 사업도 없었으며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들을 우리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억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광주에서는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토론회’와 지난해 경찰의 살인적인 검거로 13층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5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투쟁국장 김준배 열사의 1주기 추도식 등이 진행되었다. 부산에서 열사의 1주기 추도식등이 진행되었다. 부산에서는 대국민캠페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 양심수 전원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기무사 공안기구 해체,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의 날’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기금 마련을 위한 하루주점이 열리기도 했다.
 19일 우리학교 80, 87년 총학생회장이었던 오원진, 윤재영 열사를 포함해,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하다 운명한 331명을 기리는 ‘제9회 민족민주열사 · 희생자 추모 및 기념 주간’은 마무리 지어졌다. 또한 93년 조직되었던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사업회 준비위원회(이하 범추사 준비위)’가 당시 준비위원장이었던 문익환 목사의 94년 1월 갑작스런 다계로 중심을 잃었던 범추사 준비위를 재건하고 앞으로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역사의 흙이 되어 아직까지 완전한 꽃을 피우지 못한 열사들의 한이 풀릴 날을 기다려 본다.

오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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