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

누란지세(累卵之勢)

 포개어 놓은 알의 형태, 즉 몹시 위험한 형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사자성어 [여러 누, 알 란, 갈지, 형세 세]

 한때 사각형 블록으로 쌓은 탑에서 블록을 하나씩 빼는 보드게임 ‘젠가’가 유행했다. 젠가는 결국 탑이 무너지는 순간 게임의 승패가 결정된다. 하물며 사각형 블록으로 쌓은 탑도 쓰러지는 데, 둥근 알을 포개어 놓은 상태는 더 위태롭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를 ‘누란지세’라고 표현한다. 현재 국회에는 이 사자성어에 가장 적합한 상황에 처한 인물이 있다. 바로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다.
 “김무성(대표)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 (비박계) 다 죽여. 그래서 전화했어.”,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솎아내서 공천에서 떨어뜨려 버리려 한 거야” 
 이 충격적인 말은 지난 8일 공개된 윤상현 의원의 통화 녹취록 일부다. 윤상현 의원은 만취 상태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고 그 내용이 녹취돼 유출됐다. 공개된 내용은 비박계와 김무성 대표를 향한다. 새누리당 내 공천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이 있다는 신호다.
 윤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계 핵심의원이다.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그런 윤 의원 녹취록의 내용을 보면 공천에서 비박계를 배제시키기 위한 압력 존재에 대해 의심이 커진다. 또한 윤 의원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통화 상대가 만약 새누리당 공천위원회와 연관이 된 인물이라면 공천 과정에 윤 의원이 개입한 셈이 된다. 이는 새누리당 공천이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발등에 불똥 떨어진 건 역시 윤상현 의원 본인이다. 녹취록 유출 당일 윤상현 의원은 김무성 대표에게 직접 사과하기 위해 당대표실을 찾았지만 김 대표는 면담을 거절했다. 또한 윤 의원 지역구 인천 남구 주민들도 총선 불출마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한 주민은 윤 의원 의원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윤상현 의원을 인천 남구 을 지역구 공천에서 배제시켰다. 2선 의원인 윤 의원은 무소속 출마설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주민들 반응은 냉담한 상황이다.
 이번 녹취록 파문에서 진정 누란지세에 있는 건 윤 의원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매번 총선 때마다 여러 의원들이 의정 활동, 능력이 아닌 계파주의 논리에 따라 ‘공천 학살’을 당한다. 또한 상향식 공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데 반해 실제 당내 공천 과정을 보면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것은 여·야당 모두 해당된다.
 총선이 3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윤 의원 녹취록을 비롯해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각 당 공천 결과는 당장 쓰러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한국 정치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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