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093호부터 1100호까지

 

 

  2015학년도 1학기도 끝나가고 있다. 벌써 8번째 신문, 종강호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매호마다 한 개의 기사만 맡았던 지난 학기와 달리 많게는 4개, 적게는 2개의 기사를 매호마다 써야했다. 아쉬움도 미련도 많았던 8번의 사회면 기사에 대해 정리해봤다.
  1093호는 졸업호로 64대 편집국이 만든 첫 신문이었다. 사회면은 ‘학생 기본권에 재갈 물리는 대학 학칙’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유신시절 학도호국단에서 남겨진 대학 학칙 독소조항에 관한 기사였다. 인터뷰 당일 인터뷰가 취소되기도 했고, 인포그래픽을 도입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애썼던 신문이었다.
  1094호는 개강호로 ‘1학생회관 식대 가격 인상’ 기사가 실린 신문이었다. 사회면에서는 ‘과거사 정리 어디까지 왔나?’라는 제목으로 과거사위원회 해체와 과거사 정리의 현주소를 짚는 기사를 발행했다. 기사를 준비하며 골령골 산내 학살지 민간발굴에 참여했었다. 총알이 지나간 자국이 선연히 남은 유골들을 보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아마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기억일 것이다.
  1095호는 한창 김영란법으로 모든 언론이 시끄러울 때였다. 사회면에서는 논란의 중심이 된 김영란법의 3가지 쟁점에 대해 짚는 기사를 준비했다. ‘김영란법 취지 살려 부패 근절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을 만나는 등 논란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졌던 취재였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사임에도 기사 잘 봤다는 독자메일을 받아 민망했던 기억이 남는다.
  1096호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기사였다. 준비하던 기사가 2번이나 엎어졌고 가까스로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라는 제목의 인식조사 기사를 낼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통틀어 가장 아쉬운 기사로 기억되는데 좋은 아이템을 빠른 시간 내 준비하려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함께 설문조사하느라 고생한 동기 기자들에게 미안한 기사였다.
  1097호는 세월호 참사 1주기 기사였다.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기사로 그 어느 때보다 감정적으로 힘든 취재였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어야 했고, 취재 과정에서도 화를 억누르는 것이 아닌 울음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1098호는 발행 직전까지도 속을 끓였던 기사였다. ‘언론 노동조합, 지역 언론의 위기 타개할까?’라는 제목의 기사로 대전일보 노사갈등을 통해 지역 언론의 현실에 대해 짚어보는 기사였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언론사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어 편집국 내에서도 발행 직전까지 속을 끓였었다. 신문이 발행된 이후에도 내심 긴장했던 기사였다.
  1099호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기사로 ‘여기 혐오가 숨 쉬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발행됐다. 취재는 기자 안의 편견을 깨는 것에서 시작했다. 기자도 모르게 쌓아둔 편견을 끊임없이 발견했던 취재였다.
  그리고 1100호 종강호다. 여전히 기사는 마음에 꼭 들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고 미련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6명의 취재원을 만났으며, 17개의 사회면 기사를 썼고, 8번의 신문을 발행했다. 
  이번호를 끝으로 고정란 ‘사연 없는 기사는 없다’가 마무리된다. ‘하필 고정란을 이런 제목으로 만들어서 더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돌이켜보니 뿌듯한 시간들이었다. 한 학기 동안 부족한 기자의 기사 읽어준 학우들에게 감사드린다.
 

글 / 곽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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