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 속에 피워낸 검은 잎


 

 

  시인 기형도의 29년의 짧은 삶 
  1960년 경기 출생, 본래는 유복한 집안이었으나 부친의 중풍으로 인해 모친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고, 불의의 사고로 잃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5년 연세대를 졸업하던 그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분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걸었다. 그 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했으나, 1989년 그의 나이 29세에 종로의 어느 극장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바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시인, 허무주의 시인으로 대표되는 ‘기형도(奇亨度, 1960.2.16.~1989.3.7.)’다.
  시인 기형도는 사후에 더 유명해진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준비하던 시집이 그가 세상을 떠난 그 해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으로 출간된 이후 더 유명세를 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젊은 시인이었기에 아직 세상에 이름을 다 알리지 못한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그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기형도, 검은 영혼의 파편들
  그는 생전 자신의 삶을 “나의 영혼은 검은 / 페이지가 대부분이다”(‘오래된 書籍’)라고 표현할 정도로 허무주의에 대해 깊게 탐구하던 시인이었다. 많은 청춘들이 사랑하는 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역시 그러한 그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라고 말하던 젊은 시인 기형도는, 한창 푸르른 젊은 날을 대체 어떤 허무로 살았던 것일까. 그의 작품에 드리워진 어둡고 음침한 그림자는 죽음으로 안내하는 사자처럼 끔찍하고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악몽처럼 괴롭지만 우리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울림과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너무 가볍다면 가벼워서, 너무 무겁다면 무거워서, 그렇게 거리를 쏘다니는 청춘의 나날은 늘 외롭고 탄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밤거리를 배회하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텅 빈 가슴을 만나고는 한없이 먹먹해지게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젊은 날의 회고로 미루어 보면 그의 탄식은 한번쯤 느껴봄직한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쉽게 이 젊은 시인의 음울함을 따라갈 수 없다. 너무 단호하게 짙은 그의 어두움, 이미 무덤 속에 누워있듯 서늘한 그의 허무. 읽을수록 헛헛해지는 가슴을 매만지면서도, 죽음만큼 매혹적인 그의 시를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시인
  ‘그로테스크 리얼리즘(Grotesque Realism)’이라는 말은 본래 바흐친의 문학 이론에서 나온 비평용어로, 역동적인 하나의 소설기법으로서 카니발적 현상이 수용된 문학양식을 말한다.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통한 예술표현은 기존의 형태를 일그러뜨리거나 과장시켜 기괴한 양식으로서 재탄생시키는 방식을 뜻한다.
  평론가 김현은 기형도의 시를 가리켜,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과 부재한 현존, 현존하는 부재가 들어있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하였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어둡고 서늘한 이미지 때문이다. 또한 그는 ‘괴이한 이미지들 속에, 밖에, 뒤에, 밑에 타인들과 소통할 수 없어져 자신 속에서 임종처럼 자라나는 죽음을 바라보는 자신과 공간에 갇힌 자의 비극적인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하며 기형도 시의 세계를 평가했다. 한편 사후 출간된 그의 유고 시집인 《입속의 검은 잎》의 제목은 기형도의 시를 그로테크스 리얼리즘 시라 평했던 평론가 김현이 정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실제로 그의 작품 여러 곳에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모습은 드러난다. “ …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하며 그곳으로 가는 길을 없애 이 생에서 더 이상 목적 없이 만들고,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물 속의 사막’)라고 하며 살아온 생애를 ‘헛것’으로 만들어 남은 생의 의미를 실종시킨다든지, “내 마음은 고통에게서 조용히 버림받았으니”(‘가수는 입을 다무네’)라며 어리석었던 청춘을 고통에게 조차도 버림받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이 모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허무와 죽음의 매혹     
  우리는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적인 시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차가운 리얼리즘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보여주는 완벽한 허무에서 우리는 슬픔의 힘을 얻고 시적 몽상을 통해 현실이 아닌 그 어떤 세계로 떠나간다. 때로는 답답한 현실의 도피처로, 때로는 고통 없는 세계로.  그렇게 우리는 기형도를 통해 오히려 삶보다 매혹적인 죽음을 떠올리며 무(無)의 세계에 알몸으로선 스스로를 다시금 진솔하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젊은 날 도회지에서 서성대며 방황하던 고뇌들을, 시대의 청춘을 대신하여 그 모든 짐을 짊어지듯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져간 한 젊은 시인을 통해서 말이다.
 

송지혜 대학원생 기자  cinepoem15@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