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권리 사랑할 권리, 성소수자 인권

     
 
     
 
 

 

   지난 5월 15일,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4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4 보고서>를 보면 2014년 한국 성소수자 인권 지수는 12.15%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차별의 단계로 나타났다. 2013년(15.15%)보다도 낮아졌으며 유럽 49개국(▲영국 / 벨기에 80%, ▲네덜란드 70%)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단계다.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은 전무한 상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이종걸 사무국장은 “성소수자 인권을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고, 소수자들의 주장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배제된 성소수자 인권
  2014년 1월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인권 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온뒤무지개재단’은 법인 설립을 거부당하고 있다. 서울시는 ‘미풍양속에 저해되는 사안이라 사단법인 등록이 안 된다’, ‘담당부서가 없다’라는 이유로 10개월간 설립 신청 접수를 보류했다. 법무부 역시 “(법무부는) 보편적인 인권을 다루는 곳이므로 한쪽에 치우친 주제라 허가가 어렵다”며 접수를 거부했다. 이에 비온뒤무지개재단은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귀 단체는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는 단체로서 법무부의 법인설립허가대상 단체와 성격이 상이하여 법인 설립을 허가하지 아니한다”라는 이유로 법인 설립을 불허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은비(리인) 모금팀장은 이러한 상황에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이은비 모금팀장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법무부에서 사회 소수에 치우친 인권은 다루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회장 겸 공익인권법 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 역시 “인권의 보편성은 모든 인간이 누려야할 권리를 의미한다. 수적 다수가 아닌 소수자들의 인권이 보편적인 인권이 아니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차별을 시정하고 평등을 구현해야하는 법무부가 성소수자 단체를 차별한 것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성소수자 인권은 국가기관에서 마저 보장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12월에는 반성소수자 단체 및 보수개신교의 반대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가 무산됐다. 또한 서울특별시 성북구 주민참여예산 주민제안사업으로 5900만원이 확정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이 지역 교회의 반대에 부딪혀 불용됐다. 공인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한가람 변호사는 “국가기관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오히려 국가기관이 나서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차별·배제하고 있다. 의무를 방기한 행위다”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안정아 캠페인 코디네이터는 “이러한 사례들은 세계인권선언의 평등권, 차별 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하고 있다”며 “정부는 인권의 보호, 존중, 증진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들은 정부가 성소수자에게 차별적인 법을 적용하거나 차별하는 이들의 편에 섰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편향된 태도는 일부 성소수자 혐오세력들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됐다. 장서연 변호사는 “과거부터 동성애 혐오나 반대의 입장들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혐오의 수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를 참고하면 LGBTI가 살아가기에 한국사회가 어떠한가의 물음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93.4%로 절대 다수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장서연 변호사는 “본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있냐는 물음에 20.3%가 아무도 모른다는 응답을, 27.6%가 거의 모른다고 응답했다. 거의 반 정도가 본인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본인의 정체성을 모른다는 것”이라며 “당사자들의 두려움도 요소가 되겠지만 당사자들이 느끼기에 한국사회가 커밍아웃하기에 안전하거나 신뢰할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LGBTI들에게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비 모금팀장은 “다양한 상황의 문제인 것 같다”며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족, 친구, 학교, 직장 등 다양한 사회적 공동체에 속한다. 이 중 한 공동체에서라도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성소수자들에게 살기 좋은 사회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제도의 공백과 인식의 변화
  그러나 성소수자들을 향한 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가람 변호사는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나 보장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은비 모금팀장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가 아예 없다”고 단언했다. 가장 기본적인 법이라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은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2년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됐으며 2013년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항의에 의해 발의 철회됐다. 장서연 변호사는 “보편적인 차별을 금지한 차별금지법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것이 뒷받침됐을 때 동성혼이나 동성파트너쉽 등이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일부 법 조항들은 역으로 성소수자들을 얽매고 있다. 군형법 추행죄는 군인 간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까지도 처벌하고 있으며 트렌스젠더의 경우 성별전환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들을 충족해야만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생식능력 제거’ 요건으로, 장서연 변호사는 “일률적으로 생식능력을 제거해야 성별전환을 인정하는 것은 불임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까다로운 성별전환판정은 트렌스젠더에게 병원이나 은행·관공서에서 신분확인을 받아야하는 등의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장 변호사는 “투표장에서까지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니 본인의 당연한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이러한 성별전환판정조건을 낮추고 있는 추세다. 안정아 캠페인 코디네이터는 “노르웨이에서는 트렌스젠더가 법적으로 성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불임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법을 개정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은비 모금팀장은 “차별금지법과 같은 제도가 만들어져야 인식이 바뀌고 성소수자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가람 변호사 역시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국가가 조직적인 차원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들을 펼칠 때 사회적 인식 역시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성혼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이 2001년 17%였던 것이 2013년 25%, 2014년에는 35%까지 상승했다. 19~29세는 무려 66%에 이르는 사람들이 동성혼에 찬성하고 있다. 장서연 변호사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성소수자들이 다르지 않다고 해도 일상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낯설고 불편하다”며 “일상 속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킨다. 보여지는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우리 사회는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가람 변호사는 성소수자들에게 인권이란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권리, 사랑할 권리”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에게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사랑하기 힘든 사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틀림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날을 기대해본다.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참고.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2013)
한국 LGBTI 인권 현황 2014 보고서(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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