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1번째 세계문화유산 눈앞으로 다가오다

 

                         ▲백제 왕성을 호위하던 웅진성 수문병과 장군의 모습

 

 

                                                       ▲공산성 서문(금서루)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병사들

 

                          ▲활  쏘기 체험을 하는 외국인 관광객. 활 쏘기는 1냥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해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등재를 권고하여 유네스코에 최종 평가서를 제출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영토 분쟁 발생지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보류를 내린 것을 제외하고는 ICOMOS의 권고의견을 그대로 등재하는 전통을 고려해볼 때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확실시된다.

 

                                               ▲송산리 6호분(내부)을 재현한 모형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으로 도약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밭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강종원 교수(한국사 전공)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란 국경을 초월할 만큼 독보적이고 현재 및 미래 시대의 전 인류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문화를 의미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백제문화가 국제적으로 가치와 의의를 평가받았으며, 인류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준 6가지 중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등 2가지 항목을 충족했다. 강 교수는 “백제는 한국 고대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대 왕국들 간의 상호 교류를 통해 백제가 이룩한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 확산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도의 입지나 불교 사찰, 성곽과 건축물의 구조, 고분과 석탑 등에 내재되어 있는 백제의 역사, 내새관과 종교 등을 보여주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인류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문화유산은 재질, 기법 등에서 원래 가치를 보유해야 하는 진정성을 필요로 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 최혁 학예연구사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외곽성, 왕성, 사찰, 왕릉 등 전체적인 도시구조의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양호한 보존 상태는 평가에 긍정으로 작용했다. 최혁 학예연구사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 운영지침에 근거한 각 유산별 보존 관리의 종합적인 요구를 충족했다”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더 이상이 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가능한 원 상태를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시대의 향기를 좇아서
  백제의 역사는 수도의 위치에 따라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로 나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의 유산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 왕도와 관련된 8개의 유적으로 구성된 연속 유산으로서, 공주 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10일 백제의 두 번째 왕도였던 웅진(現 공주)의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공주를 찾았다. 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0분 동안 이동하면 왕성인 웅진성으로 추정되는 공산성을 마주하게 된다. 공산성은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등 5대 64년간 백제왕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소식이 전해져서인지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외국인 관광객(사진)도 눈에 띄었다. 때마침 공산성 서문(금서루)에서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이 열려 당시 백제 왕성을 호위하던 수문병들의 근무와 교대식을 재현하고 있었다. 이어 백제 병사의 의상을 입은 두 사람의 무술 대련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백제 의상 체험, 활 쏘기, 백제 왕관 만들기, 백제 탈 그리기 등의 체험코스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체험코너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종합안내소에서 돈을 엽전(웅진통보)으로 교환해야 한다. 1냥이 2천원이다. 
  성 내에는 웅진시대 백제의 왕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추정 왕궁지와 재위 말기 환락에 빠진 동성왕의 연회 장소였던 임류각지와 같은 백제의 유적이 남아 있다. 공산성을 둘러보는 데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날은 날씨가 온화하고 맑아 산성을 따라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는 송산리 고분군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 깃발이 걸려 있다. 사신도는 백제와 중국 남조 간의 왕성한 국제교류를 보여준다.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깃발의 그림과 테두리 색이 달라 성곽을 따라 걸으며 알아맞히는 재미를 즐길 수도 있다.
  공산성은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다. 공주를 휘감아 도는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자연적인 방어선 구실을 해주었다. 한성시대 한강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상무역은 웅진시대 금강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됐다. 금강을 따라 번화한 포구들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와 공주의 전경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경사가 가파른 성곽을 올라가면서도 시원하고 가뿐했다.
  1971년 7월 8일 공주 송산리 고분 5·6호분의 배수로를 공사하던 중 우연히 벽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구조물이 발견됐다. 마침내 무덤의 봉분이 풀리더니 4천 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유물이 발굴됐다. 송산리의 다른 고분들과는 달리 도굴당하지 않고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 웅진시대의 기틀을 다진 백제 25대 무령왕이었다. 무령왕릉은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이다. 최혁 학예연구사는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백제의 장례와 매장에 대한 정보를 주는 특출난 증거”라고 말했다. 사실 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따라서 1971년 무령왕릉의 발견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무령왕릉에 부장되어 있던 다양한 유물들 하나하나가 백제의 정신과 세련된 백제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한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현재는 무령왕을 포함해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이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으로 구분된다. 이곳은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시원하고 자연의 푸르름이 더해져 장시간 이동의 피로를 덜어주었다. 무령왕릉 및 5·6호분을 재현한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은 고분의 내부와 발굴 과정 등을 보여준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그 가치를 결정짓는다
  원론적으로 우리가 백제의 역사유적을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종원 교수는 “문화유산은 한 번 훼손되면 영원히 재생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진다. 어느 한 시대의 역사를 복원하고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유산은 온전하게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식 하면 거창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식은 사실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며 “역사와 문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노력에 따라서 풍성해지기도 하고 또 그 가치가 만들어진다. 후손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역사와 발전된 문화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현재를 어떻게 채워갈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혁 학예연구사는 “백제의 멸망 이후 현재까지도 지역주민들은 백제 문화와 정신이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이는 60년의 긴 역사를 가진 백제문화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들 우리가 함께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유산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역사를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멀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충분하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문화유산에 새겨진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 그것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글 / 허채은 기자 gwo12@cnu.ac.kr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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