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실 만큼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다. 구구절절 예시할 필요조차 들지 않을 정도다. 통상 30년 차를 일컫는 세대차이가 요즘은 쌍둥이도 느낀다고 한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흘려들을 일만은 아닌 듯하다.

구글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20억 개 이상의 일자리가 소멸되리라 예측했다. 빌 게이츠도 최근에, 수많은 직종이 향후 20년 안에 로봇과 자동화로 사라질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걱정을 강요당하는 학생들에게 결코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취업 자체도 버거운 일인데 머지않은 미래에 무수한 직업이 사라진다니 불안에다가 혼돈이 가중되기 십상일 터이다. 하지만 낙담할 일만도 아니다. 닳고 닳은 말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위험 요소가 수반되지 않은 기회란 게 어디 있던가.

  혼돈의 시대일수록 대학은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정체성부터 찾아야 한다. 우리가 대학이라 부르는 고등교육기관은 12세기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해 태동했다. 동양에서는 국가통치의 일환으로 관리자를 양성하고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 대학이 등장했다. 유럽은 교사와 학생의 자치공동체로 출발했고, 동양은 국가가 직접 설립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대학이 당대의 필요에서 고안된 기관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근대의 틀이 형성되던 1810년 지금의 독일에 베를린대학이 세워지면서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교양인을 길러내는 방향에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의 화두는 단연 경쟁력 강화에 있다. 너나할 것 없이 경제 마인드에 의거한 구조개혁에 몰두하고 있다. 과거 국가권력의 주도로 강행된, 산업화를 통한 근대화와 닮은꼴이다. ‘취업이 인문학보다 우선하며 취업 중심으로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전경련 회장의 발언이 아니다. 바로 교육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밤을 지새우며 실적 쌓는데 열성인 연구자만 즐비할 뿐 혼신을 기울여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를 학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체성은 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재구성된다. 패러다임 대전환기에 대학은 존재이유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제한된 자원을 두고 서로 싸우는 경쟁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대신 공감능력에 기초한 협업이 중요해졌다. 기존 상식의 틀을 깬 기업들이 속속 출현하고 각광 받고 있다. 가히 상상하면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대학은 학생들로 하여금 변화의 흐름을 읽고 안목을 키우게 함으로써 미래 경쟁력을 갖추도록 변신해야 한다. 이를 방기하면 대학과 대학교수부터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위기가 클수록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 전제는 우리가 시류에 떠밀려 다니지 않고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63주년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우리 대학이 ‘퍼스트 펭귄’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가슴 벅찬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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