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네다”

  북측에서 온 여학생은 마치 영화(이왕이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같은) 주인공 같은 외모와 말투로 취재기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버렸다. 평양 장철구 상업대 외국어 학과에 다닌다는 이 여학생은 열띤 취재 경쟁에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먼저 남측에 온 느낌을 묻자 “이렇게 환영해 주니깐 역시 한민족 한겨례라는게 느껴집네다”라고 답한다. 마치 수상식에 참가한 여배우 같은 똑 부러진 답변에 그녀에 대한 신비감은 더해만 간다. 순간 모든 걸 제쳐두고 그녀에 대한 ‘작업’이 발동한다. 용기를 내어 “남측 대학생들 보니깐 어떤가요? 저도 대학생인데”라고 묻는다. 하지만 북측 여학생은 그저 웃으며 ‘반갑습네다’라고 말해 버린다.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일까. 아쉬움에 응원단을 취재하던 카메라를 향해 “결혼하기 전까지 빨리 통일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 버렸다. 이렇듯 아직은 쉽지 않은 ‘감정’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북측 응원단 취재 중-



U대회 개막식에서 세계 대학생 한마당까지

  지난 21일 늦은 7시 세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리는 대구 월드컵경기장은, 대구 특유의 찜통같은 날씨와 아슬아슬한 불쾌지수선 속에서도 열기가 대단하였다. 열기의 시작은 아리따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응원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백50명의 북측 응원단들이 경기장내에 들어오자 일순간 주위가 술렁거린다. 북측 응원단들이 자리를 잡자마자 전경들이 주위에 벽을 쌓지만 시민들과 취재진들의 시선은 온통 그 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응원단 앞으로 모여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펼쳤다. 이에 화답하듯 북측응원단들은 ‘휘파람 소녀’등을 부르며 응원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에 북측의 참가여부가 불투명했던 터라 더욱 열광 할 수밖에 없었다. 17일 예정이었던 U대회 북측 참가단 입국이 북측에서 이를 연기하면서 북측의 이번 대회 참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북측에서 국내 보수단체들의 ‘반핵반김 8·15국민대회’가 이북체제를 모독한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자 이북은 입장을 선회하며 참가할 의사를 전달했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남북 공동입장’이었다. ‘아리랑’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손을 맞잡으며 걸어 들어오는 남북선수단의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남색정장을 입고 등장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있던 북측 응원단들도 한껏 단일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이날 WE LOVE YOU를 외쳤던 ‘오라 시민 서포터즈’의 수연(위덕대·2)양은 “기대가 남달랐던 만큼 북측 선수들의 불참 소식을 듣고 실망도 컸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북측 선수들이 오게 되었고 선수들과 응원단들을 직접 보니 꿈만 같다. 북측 선수들의 참여로 축제 분위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라며 개막식 분위기를 설명했다.


23일, 대학생들 대구에 모이다

  U대회가 대학생들의 잔치라서 그런 것일까. U대회가 열리는 내내 우리의 젊은 대학생들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가장 먼저 좀이 쑤신 것은 대학교 풍물패였다.

  23일 대구시 국채보상운동공원에는 약 1천여명의 대학생풍물패가 모였다. 길을 가던 대구시민들은 신기한 눈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뭣들 하는 사람들이고”라고 묻는 한 시민은 이내 한반도기를 보고는 ‘한총련’이라고 단정 짓고 길을 떠나버린다. 개중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지켜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런 여러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여기 모인 대학생들은 그저 ‘출발’ 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이윽고 대학생풍물패들은 대열을 정리하고 곧이어 대규모 길놀이를 시작한다. 국채보상운동공원에서 두류공원까지 약 3시간, 푹푹 찌는 대구의 더위 속에서도 풍물패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소리에 이끌린 대구시민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고 물을 갖다 주기도 하였다.

  이날 길놀이에 참가한 전국 1천여명의 학생들은 ‘객석에서 무대로 대학생들 모여라’라는 기치아래 U대회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모였다 한다. 단연 주제는 ‘평화’와 ‘통일’이다. 풍물패에 참가한 우리학교 이은미(심리·3)양은 대구U대회가 대학생들의 축제라는 점과 남북교류의 장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대학생인 만큼 스스로 U대회의 의미를 느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길놀이의 끝인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 도착할 즈음에는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도착한 대구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야외음악당에 풍물패가 모두 들어서자 무대 위에서는 또 다른 신명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7시부터 시작된 ‘평화기원 통일염원 세계 대학생한마당’ 본무대에서는 각 대학교에서 준비한 여러 장기들을 선보였다. 락밴드 공연에서는 시민들이 무대 앞에 모여 환호성을 치기도 했고, 용인대학교 태권도동아리에서 준비한 태권도 시범에서는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 밖에 택견 시범, 폴란드민속춤 공연, 댄스 안무 등 프로 못지않은 기막힌 무대들이 늦은 밤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넘치는 끼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기특하다’, ‘장하다’로 압축되었다. 특히 아무런 도움 없이 학생들 스스로가 준비한 무대라고 말해주자 시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무대를 지켜본 송정화(36·전주)씨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뭉치기가 힘든 법인데 대학생들은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행사 중간중간에 통일이야기를 하거나 민중가요를 부를 때는 어색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제 보니 한총련 학생들 같다”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모인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들 긍정적이다. 한총련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이라는 한 시민 역시 “통일하겠다고 하는 건데 누가 뭐라카노. 대학생들이면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래야 되는 것 아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모인 대학생들을 굳이 한총련이나 혹은 어느 단체로도 묶을 필요는 없다. 응원무대를 선보였던 조정준(명지대·2)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느 학생운동 조직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같기에 이 자리에 나왔다”

그들은 단지 통일과 평화 문제에 민감한,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엔 좀이 쑤신 우리의 ‘젊은 혈기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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