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윤전기에 모래를 뿌려라

 

 

   백지 발행. 사실 백지 발행은 편집권이 박탈된 최악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어떠한 외압도 없었고 편집권도 박탈당하지 않았지만 이번 사회면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말 백지 발행할 뻔했다. 이유는 기사가 없어서였다. 2주라는 취재기간 동안 사회면 기사가 두 번이나 바뀌게 됐다. 그 과정에서 취재기간 반이 증발했다.
   급하게 ‘재학생 북한·통일 인식조사’로 기사 방향을 틀었다.  사실 설문조사 기획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나 이번 기사의 경우에는 설문조사지의 표현 하나가 설문조사 결과를 뒤바꿔 놓을 수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짧은 취재기간은 사전 준비의 부재를 가져왔다. 기자로서도 욕심이 났지만 정치학도로서 욕심도 컸던 기획이었다. 욕심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한 기사가 돼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기자 역시도 설문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통일의 필요성에도 크게 공감하지 못했고 현 상태가 유지되길 원했다. 그러나 그랬던 기자의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중학생 때 우연히 관람하게 된 전시회였다. 전시회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정치적 입장을 모두 떠나 기본적인 인권마저 사치가 돼버린 북한의 현실은 기자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 후부터 북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그 관심이 이번 기획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취재를 하며 놀라웠던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군사·핵무기 등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협력 대상, 지원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기사에서도 나왔듯, 이러한 조사결과에는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언론이 북한에 가지고 있는 프레임 자체가 군사적인 것이 많아 언론을 통해 정보를 구하는 학우들 역시도 군사적인 부분이 가장 많이 떠올랐을 것이다.
   두 번째는 주변국에 대한 친밀감이 평균 5점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산정책연구소에서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주변국에 느끼는 친밀감과 비교했을 때 우리 학우들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가 평균 1점 가량 낮았다. 글로벌 넘버원 국립대를 자칭하는 우리 학교에서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 고민해볼 문제다.
   기사를 준비하며 몇 번이고 윤전기에 모래를 뿌리러 가려 했다. 사실 이 고정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윤전기에 모래 뿌리러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된다. 과연 이번 신문이 정상적으로 발행될 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덧붙여, 기자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기사를 쓸 수 없는 사람이다. 입사 첫날부터 설문조사지를 돌린 수습기자들과 광범위한 민폐에도 묵묵히 설문조사에 동참해준 편집국 사람들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설문조사에도 흔쾌히 응해준 학우들께 감사드린다. 사회면 정말 백지 발행할 뻔 했다.

글 /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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