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21세기 공동체

“자신이 자기 이야기의 주체가 되고
그 이야기가 건강하게 유통될 때
사람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는 ‘이야기 주머니 설화’가 나온다. 이야기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자루에 이야기를 모두 넣고서 자루의 입을 꼭꼭 묶어 두었다. 그 후 소년이 장가를 가게 되자 주머니 안에 갇힌 이야기들이 소년을 해치려 했고 이들의 음모를 우연히 엿들은 소년의 하인이 소년을 구한다는 얘기다. 이야기의 유통과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유통되어야 부패하지 않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게 되면 그의 고유한 이야기도 사라진다. 또한 살아가는 사람도 그의 이야기가 유통되지 않으면 삶도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SNS와 같은 사회 연결망에 끊임없이 접촉한다. 내 이야기를 발신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신하며 좋아요를 통해 이야기를 유통하는 중간자의 역할까지 자처한다. 현실에서도 누군가의 고유한 이야기, 즉 한 개인의 설화가 유통될 때 죽어가는 사람을, 죽어가는 이야기를 살릴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원도심 활성화 사업은 지자체의 중요한 문제다. 원도심을 살릴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떠나지 못했거나 떠날 여력이 없는 아픈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집에 ‘이야기 문패’를 달아주면 어떨까. 그것은 아마 ‘누구의 이야기 집’과 같은 형식일 것이다. 원도심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큐 형식으로 엮고 그들 스스로 이야기의 저작권자가 되도록 돕는다면 어떨까. 자신이 자기 이야기의 주체가 되고 그 이야기가 건강하게 유통될 때 사람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최고(最古)이면서 최초의 이야기 저작권자들이 사는 마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야기 심리 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선플’처럼 이야기를 유통하는 유통업체(?)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한 유통업체들이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성격을 가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신미정(철학과 ·동양철학전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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