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과거사 위원회, 맥 끊긴 진상규명

   지난 2월 27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과거사는 잊자는 요지의 위 발언은 우리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에 부정적인 것은 비단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만은 아니다. 국가적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전면 중단된 지 올해로 5년째다.

 

1. 대전 산내학살 유해발굴지에서 발굴된 턱뼈 
2.대전 산내학살 피살자를 기리는 비석 앞에 국화가 놓여있다 
3. 대전 산내학살지를 알리는 현수막


   정치적 입장 속 해체된 과거사 위원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시작된 ‘과거사 정리’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등 과거사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일제강점기부터 제6공화국까지의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역시 2005년 12월 1일 출범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과거사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과거사 청산 요구와 노무현 정권의 관심이 과거사 위원회를 추진시켰다”고 말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국민적 과거사 특별법 제정 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 한시법으로 제정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거사 위원회는 2010년을 전후로 해체됐다. 가장 큰 규모였던 진실화해위원회 역시 2010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법적으로 활동기간을 2년 연장할 수 있었음에도 연장은 없었다.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진정된 사건조차도 모두 처리하지 못했다”며 “과거사는 시한을 정해 4~5년 만에 청산할 수 없다. 국민들과 피해자들이 충분하다고 인식할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거사 위원회 활동 종료에는 정치적 입장이 얽혀있다. 과거사 문제는 잘잘못을 떠나 정치적으로 작용한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실제 가해주체들이 집권세력과 연관돼 있는 경우가 많아 과거사 청산 문제는 고도적 정치행위”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국장 조영선 변호사는 “과거사를 되짚어보면 과거사 문제는 집권여당의 원죄로 볼 수 있다”며 “과거사 청산이 집권여당의 정치권력, 정통성, 민주정당성을 흠집 낼 수 있어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역시 과거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조영선 변호사는 “야당 또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인식이 없다”며 “과거사 청산에는 여야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위원회의 한계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는 ‘과거사 청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문제고,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과 비민주적 정권하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문제다. 친일 문제의 경우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출범 성과로 과거사 청산이 상당수 이뤄졌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친일문제는 국가차원에서는 마무리가 된 편”이라며 “강제동원은 60~70% 정도 청산됐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보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진행 중이나 한국전쟁과 비민주적 정권하 인권침해 문제 청산은 이보다도 열악한 상황이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문제나 독재정권 당시 인권침해 문제는 10~20% 밖에 청산 되지 않았다”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로 인한 피해문제는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처리한 사건은 11,175건으로 50~100만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피해규모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1,175건에서 진실규명된 사건 역시 8,450건으로 75.6%에 불과하다.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사건 조사 신청기간에 진정을 낸 사람들은 전체의 3~5% 정도”라며 “진실화해위원회가 과거사 청산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과거사 전반을 본다면 시작 단계”라고 말했다.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권한이 넓지 못했던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가해자들이나 범죄에 가담했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이 조사에 비협조적이라도 강제할 권한이 없었다.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증언을 거부하더라도 벌칙 조항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진실이 규명돼도 진실화해위원회의 경우 위원회의 성격에서 단점이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진실 규명과 화해라는 두 가지의 목적에만 집중했다. 가해자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지 않은 채 화해에 무게를 둬 과거사 청산이 법적 절차를 통해 정리되지 못한 것이다. 이는 역으로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를 쥐여 주는 꼴이 됐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타협안으로 피해자만 부각한 정리를 해 가해주체들이 제대로 조사되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멈춰진 과거사 정리
   그나마 존재하던 과거사 위원회가 해체되자 과거사 정리는 전면 중단됐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되며 17개의 권고사항을 제시했으나 권고사항은 현재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후속기구 설립, 추가 유해발굴, 피해자 배·보상 등을 권고했으나 이행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과거사 위원회가 활동 종료한 후에도 피해보상 등의 후속조치가 필요하나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전시 역시 단일지역에서 최대 민간인 희생자를 낸 산내학살사건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권고사항에서 말하는 정부는 중앙정부만이 아닌 지방정부도 포함한다”며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조례를 만들어 진상규명, 유해발굴, 위령제 지원 등이 필요하나 대전시와 동구청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무관심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안겼다. 지난해 11월 4일 열린 올바른 과거사 정리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국전쟁유족회 김광년 의장은 “진실규명을 받은 유족들이 직접 국가를 상대로 소송해 천차만별의 판결을 받고 있다”며 “배상 금액도 유족마다 제각기 다르고 소멸시효 등의 이유로 패소하는 유족들도 부기지수”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국가 배상 소송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줄였으며, 민주화 운동으로 보상을 받았다면 별도의 국가배상을 못 받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국가 배상 책임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실제로 대법원은 고문과 증거조작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아람회 사건’ 피해자 가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소멸시효를 넘겼으며, 광주민주화보상법에 의해 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패소시켰다.
   국가차원에서의 과거사 정리가 중단되자 민간차원에서의 후속조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과거사 관련 전문 잡지를 만들어 과제를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민간차원의 유해 발굴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3일 ~ 3월 1일에는 민간차원의 제2차 한국전쟁 유해 발굴조사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있었고 지난해에는 1차 한국전쟁 유해 발굴조사가 진주에서 진행됐다.

 

4. 총알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유해
5. 유해발굴 중인 발굴단

   과거사 정리 앞으로의 과제
   지난해 8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을 필두로 한 14명의 의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기존에 신청하지 못한 사건과 조사가 미진한 사건에 대한 추가조사 및 신청기간 연장, 3년간 진실규명활동기간 추가, 명예회복사업 추진재단 설립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성곤 의원실은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이 일단락되었다는 판단과 추가 재정 부담이 개정안 제정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심규상 전 자문위원은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사는 밑거름이다. 과거사문제를 돈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 조영선 변호사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인식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라고 말했다. 김성곤 의원실은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올해 안에는 개정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사 문제와 연관된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연대해 안전행정위원회 또는 국방위원회와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삼일절과 광복절이면 상투적으로 나오는 말이지만 내포하는 뜻은 결코 상투적일 수 없다.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는 이상 역사는 되풀이된다. 또한 국민의 한을 풀어주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의 기본 역할마저 못하는 무능한 집단에 불과하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조속한 과거사 정리가 요구된다.

 

 글 /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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