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도문제의 현상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것은 우리의 기록만이 아니라 일본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고 그 기록들은 일본인들도 읽고 있다. 그런대도 일본이 독도를 죽도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우리는 새삼스럽지만 독도가 왜 우리의 고유영토인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 일본은 사실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일본에 전하고 일깨워 주었음에도 그들은 감사는커녕 탐욕에 사로잡혀 왜구나 풍신수길, 이등방문과 같은 형태로 침탈하는 자세로 일관한다. 탐욕의 죄를 범하고도 반성하거나 사과하는 일이 없다. 그러다가도 또 다른 탐욕을 위해 미래를 열어가자는 제의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일본에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해왔는데, 그런 우리가 ‘조선에는 어떤 짓을 해도 좋다’라고 생각하는 일본을 만들어 냈다.
    일본은 포로 몇을 송환하거나 약탈품 한두 개를 반환하면서 우호를 실천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일본으로서는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 일이나, 우리는 원상도 회복하지 못하는 일이다. 일본은 그런 경험을 믿기 때문에 독도의 영유권도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이다. 일단 주장을 하면 얻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우리는 얻는 것이 없고 일본은 잃는 것도 없으면서 양국의 화합을 위해 양보했다는 명분을 얻을 것이다.  
    독도문제는 역사와 국제법적인 면에서 보아야 하는데, 역사적 정통성의 확보가 기본을 이룬다. 그런 우리의 정통성을 확인해줄 수 있는 기록은 많은데 “삼국사기”의 512년 기록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곳의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영토로 하는 국가였다는 것만 확인하면 우리의 정통성이 확인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방기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에 불리한 자료를 언급할 필요가 없겠으나 우리가 그것을 방기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은 17세기에도 있었다. 그때는 대마도가 막부의 뜻을 왜곡하면서 울릉도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조선이 기록에 근거하는 논리를 전개하여, 일본이 그것을 인정하게 했다. 이후의 일본은 그 결정을 존중하여, 침략으로 국부를 이루겠다는 일본제국도 존중했다. 그러던 일본 제국이 1905년에 주인이 없는 독도를 발견했다며 자국에 편입시킨다는 발표를 하더니, 현재의 일본이 그것에 근거하여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세계대전 이후에 연합국은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고 여러 차례 결의했다. 그때 미국이 일본의 주장을 지지하려다 연합국의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전통적인 왜구의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침략으로 구축한 국부를 교육에 투자하여 침략 행위까지 정당화시킬 수 있는 학자를 많이 양성했다. 반면에 망국으로 교육의 기회를 상실한 우리는 일본의 논리에 대적할 수 있는 학자는 물론 경제적 여유도 없는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일본이 제기하는 독도문제에 대응해야 했다. 외교 경제는 물론 학자들의 능력도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으나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사실에 힘입어 일본의 침탈야욕에 용케도 대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독자적인 논리로 일본에 대응하기보다는 일본 논리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부정하거나 비난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논리에 끌려 다니기 쉬워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그런 논리와 방법으로는 일본 논리의 모순에서 일탈할 수 없다.  
    현재의 우리는 세계적인 교육열로 상당한 국부를 형성하여 일본을 능가하는 동량들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독도논리는 기존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일본의 논리를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 우리의 독자적인 논리를 구축해서 일본까지 납득시켜야 한다. 그것은 기록의 객관적인 해독과 해석으로 가능한 일이다.


권오엽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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