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지만, 공감은 영혼을 살찌운다.

출처. (왼)blog.daum.net/insightplus (오)twitaddons.com
    공감의 동물: 인간
   우리는 이렇게 혼잣말하게 된다. 자기 가족한테서 내쫓기면 벌레가 된 느낌이겠구나(카프카), 영혼을 잠식당한 외국인 노동자는 이런 느낌이겠구나(파스빈더) 또는 쓰레기통에 갇혀 빵죽을 먹고 사는 늙은 어버이는 이런 느낌이겠구나(베케트), 라고.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에 나오는 굶주린, 젊은 지식인 화자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자신을 먹기 시작한다. 기름이 펄펄 끓고 있는 튀김 솥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피부가 터지고 짓무른, 끔찍하게 부풀어올라 반쯤 익어버린 채 파괴된 조직 사이로 피가 벌겋게 배어 나오는 붉은 손은 배수아 작가가 그려낸 사랑의 고통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고 또 해보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함순과 배수아는 우리가 그것을 공유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이 공감을 낳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현대 뇌과학에서는 이를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힘이라고 말한다. 남의 행동과 감정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신경세포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할 뿐 아니라 영화나 글에서 본 것을 자기 것인 양 체험한다. 허구란 걸 알면서도 덩달아 울고 웃게 되는 이유, 바로 1.4kg 뇌 안에 있다.

    거울 뉴런의 발견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에서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와 동료들은 원숭이의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운동과 관련된 뇌기능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특정한 행동마다 각각의 뉴런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기록하며 하나의 동작에 대응하는 하나의 뉴런을 연구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원숭이가 뭔가를 쥘 때 활성화되는 동작 뉴런이 갑자기 활성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 원숭이가 뭔가를 쥐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 실험자의 쥐는 행동을 그 원숭이가 보던 순간이었다. 원숭이처럼 두뇌에 직접 전극을 꽂아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두뇌의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 뇌영상과 뇌파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다른 사람의 동작을 거울에 비추듯, 마치 자신이 하는 것처럼 뇌세포가 반응한다는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거울 뉴런계에 대한 연구는 수 많은 성과들을 내왔다. 거울 뉴런은 다른 행위자가 행한 행동을 관찰하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위를 직접 할 때와 똑같은 활성을 내는 신경세포로서,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뇌의 전두엽 전운동피질 아래쪽과 두정엽 아래쪽, 측두엽 앞쪽에 분포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혹은 어떤 행동이 어떻게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심지어 독서를 통해 상상만 하여도 그의 행동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거울 뉴런과 공감 능력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거울 뉴런 덕분이다. 동물과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을 맺을 수 있는 바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 때문인 것이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감정과 고통이 어떻게 ‘내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새로운 통찰을 준다. 연인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공포영화에서 쫓기는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도망가고 있는 듯 느껴진다. 심지어 우리는 타인을 직접 관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먼 지역의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라든가 다른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도덕 관념들에 대해서조차도 공감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 공감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자 거울 뉴런의 신비한 기능이다.

   문학에서 거울 뉴런의 활동
   뇌 연구의 거대한 물결은 문학과도 손을 잡고 있다. 인간이 복잡한 문학작품을 읽을 때 두뇌에서 어떤 뇌세포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뇌 스캔으로 관찰하여 독서의 이면에 있는 생리학적 과정을 규명하고자 한다.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책 『뇌를 훔친 소설가』는 쉽사리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문학과 뇌과학을 결합시킨 책이다. 석 교수는 푸슈킨의 여주인공 타티야나의 행동을 거울뉴런의 작용으로 설명한다. 낭만적이고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목숨을 바치는 내용의 소설들만 읽어온 타티야나는 소설 속의 사랑을 읽으며 그 사랑을 자기의 사랑인 양 체험한다. 수백 권의 연애소설 속에서 수천, 수만 번의 사랑을 읽은 타티야나의 뇌에서는 소설적인 사랑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신경세포들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적으로 말해서 타티야나의 거울 뉴런은 그 동안 쉴새 없이 발화해 소설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만 읽어도 우리의 거울 뉴런이 발화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푸슈킨은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타티야나 역시 그리고 현실 속에서 그 사랑을 재창조한다. 따라서 그녀 앞에 나타난 도시 청년 오네긴(난생 처음 보는 남자)이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들의 모든 특성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는 그녀의 탓이 아니라 그녀 머릿속에 있는 거울 뉴런 탓이다.
   거울 뉴런은 공감의 생물학적 기초다. 뇌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Vilayanur Ramachandran) 박사는 거울 뉴런을 두고 ‘DNA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감정들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른 이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공감의 생물학적 기초를 결여한 이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라는 일반명사로 부른다.
   사람의 신체가 훼손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는 것에 무감각하고 범죄를 저지르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기에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치명적인 비도덕적 행위들은 여전히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된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최영 대학원생 기자  now_and_he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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