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대하는 자세

『두근두근 내인생』,
김애란, 창비, 12000원

   개인적으로 시한부 환자의 인생 끝자락을 다룬 내용의 어떠한 창작물도 좋아하지 않는다. 정해진 결말을 정해진 길을 따라 또박또박 따라가며 억지로 눈물을 뽑아내려는 구성이 지루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오늘, 혹은 내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인생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무기력하거든 병원에 가서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주사액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아직 건강한 몸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교훈은 어릴 때부터 삐딱하게 듣곤 했다. 다른 이들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은 조금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로 제작돼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인생』은 젊은 부모와 그들보다 늙은 아들의 이야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친 ‘강미라’와 ‘한대수’는 우여곡절 끝에 아주 사랑스러운 ‘한아름’을 낳는다. 어린 티 폴폴 나던 미라와 대수는 어른이라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 부모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어설프게나마 부모 노릇을 시작한다.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첫 경험들을 한아름의 움직임을 통해 되새기면서 말이다. 낳기 전의 설렘과 ‘아빠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던 불안은 아기를 낳으면서 굳은 확신으로 변한다. ‘엄마들은 못하는 게 없다’는 진리를 온 몸으로 터득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태어난 한아름은 무서운 속도로 나이를 먹어 치운다. 일 년에 열 살, 스무 살씩 늙어 신체나이가 금세 부모님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것이다. 늙음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듯이 아름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없다. 그저 온 몸의 장기들이 멈추려고 하는 걸 약으로 달래가며 그 속도를 늦출 뿐이다. 17살의 아름이는 제 나이의 얼굴을 부모의 얼굴에서, 부모가 늙었을 때의 모습을 제 모습에서 찾는다. 매일매일 병원에서 쏟아내는 무시무시한 병증과 그보다 더 무서운 병원비를 각종 펀치로 묵묵히 맞으며 말이다. 조로증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 17살의 아름이는 천천히 부모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이 소설은 아름이가 그 선물을 준비하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정해진 결말을 따라 또박또박 걸어가는 내용이 아니며, 불치병 환자가 생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행복해야 해.’ 따위의 말로 눈물을 뽑아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설정 속에서 인생을 얘기하려는 것 같다. 부모라서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면 자식은 아무리 늙었어도 자식일 것이다. 노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아름이가 정직하게 자식 노릇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름이는 부모 앞에서 괜히 너스레를 떨다가 ‘죽음’과 관련된 말을 하고 굳어진 분위기에 당황하기도 한다. 부모 앞에서 일부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아름이에겐 익숙하다.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당부하자면, 절대 사람이 많은 카페나 도서관 같은 공간에서는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숨도 못 쉴 정도로 오열하며 두 번 세 번 고쳐 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진지한 조언이다. 아마 읽어보면 주책맞은 조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쁠 수 있는지, 가슴이 찢어지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건지, 아직은 도무지 알 수 없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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