❹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를 일깨워주는 비겁한 소심남 <건축학개론> 의 ‘승민’

 
   2년 전 벚꽃이 흩날리는 이맘때를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 물들였던 영화가 있다. 전람회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의 첫 소절만 흘러나와도 저절로 떠오르는 영화, 바로 <건축학개론>이다.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들의 대학 새내기 시절을 연기한 이제훈과 수지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아련하게 연기하며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첫사랑의 떨림과 풋풋함, 아련함을 잘 표현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첫사랑이 대부분 이루어질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승민은 건축학과 1학년 새내기다. 건축학개론 수업 첫날, 음대에 다니는 여자주인공 서연과 자신이 같은 동네에 사는 걸 알게 된 승민은 서연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승민은 서연을 좋아하지만 서연과 같은 방송부인 잘생기고 돈도 많은 건축학과 선배가 서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무척 신경 쓰인다. 서연이 왠지 그 선배를 좋아할 것만 같고, 그 선배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선배에게도, 서연에게도 자신이 서연을 좋아한다는 말은 쏙 빼고 빙빙 돌려가며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근히 떠본다.
   그러나 서연은 다르다. 서연은 승민에게 호감을 분명하게 표시한다. 자신의 생일날 단 둘이서 파티를 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 후에 자신의 집에 가장 먼저 승민을 초대해 니가 우리집에 제일 처음 온 손님이라고 말한다. 서연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호감을 표시하는데도 승민은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하고 싶지만 정작 그 말은 못하고 계속 말끝을 흐리며 답답하게 굴자 결국 서연이 승민에게 먼저 첫눈 오는 날 둘 만의 추억의 공간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둘이 함께 듣던 수업인 건축학개론의 종강이 온다. 서연은 수업에도 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승민이 걱정된다. 그러나 그 시각 승민은 서연에게 고백하기 위해 수업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서연의 집 앞에서 기다린다. 결국 혼자 종강파티에 간 서연은 술에 취해 선배와 함께 집으로 온다. 그 모습을 목격한 승민은 서연과 선배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자기 혼자 오해하고 서연을 피한다. 승민은 소극적인데다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속 시원히 말한 적도 없으면서 혼자 멋대로 서연을 나쁘다고 정의하고 마치 사랑에 배신당한 비운의 남자인 냥 서연에게 꺼지라고 말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연이 선배와 함께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승민이 수업에 나오지 않고 종강파티에도 오지 않았기 때문인데 말이다. 
 
   승민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처음이라 표현도, 고백도 서툰 것은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승민은 서연이 그토록 먼저 다가갔음에도 멍청하게 눈치를 못 채고 오히려 서연을 밀어낸다. 자신의 호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먼저 다가갔건만 억울하게 나쁜 여자가 된 서연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승민은 먼 훗날 서연과 다시 만났을 때도 스무살 때의 승민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소극적이고 비겁하다. 한 눈에 서연을 알아봤음에도 못 알아본 척 하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음에도 서연과 애매한 관계를 형성한다. 스무 살의 승민을 보고 있으면 대부분의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첫사랑의 감정이 벅차오르는 만큼 그 감정이 낯설게 느껴지고 처음이라서 모든 면에 서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민이 서연의 반만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조금만 덜 비겁했다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면 조금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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