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의 밤을 수높을 당신의 불빛은 무엇인가

『미생』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대한민국 서점은 학습만화 열풍에 휩싸였다. 자녀들에게 만화책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학습만화를 스스럼없이 권장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시작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마법 천자문』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줄줄이 꿰 찼다. 그 이후 만화는 무조건 비교육적이라는 편견은 깨졌고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학습만화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돕고 있다.
   2013년 현재 만화는 또 한번 변화를 겪었다. 아동교육만을 책임지던 만화는 어른들의 삶까지 어루만지게 된 것이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생』은 직장인들을 위한 삶의 지침서, 만화로 배우는 인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며 만화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미생』은 평생을 바둑 특기생으로 보냈지만, 끝내 프로기사 입단에 실패한 어느 고졸 학력 사회인 이야기다. 주인공 장그래는 시쳇말로 취업이 불가능한 무스펙자이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대기업 종합상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된다. 장그래는 수많은 엄친아 스펙자들 사이에서 바둑을 통해 업무를 통찰하며 사회의 일원이 돼간다. 이 과정에서 상사와 동료들의 인정을 받고 진정한 상사맨으로 성장한다.
   그 동안 인기 만화들은 선악의 대결구도로 선한 주인공의 승리를 그리거나,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비현실적인 만화였다. 하지만 『미생』은 적나라한 우리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현실보다 현실을 더 잘 묘사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뚜렷한 악인도 없고, 연애라는 달달한 이야기도 없으며, 비현실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압도해 버리는 통쾌한 성공담도 담겨 있지 않다.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에 가감없이 비췄을 뿐이다.
   『미생』은 스토리와 그림 자체로도 훌륭한 만화이지만, 화룡점정은 바로 주인공들이 내뱉는 진솔한 대사이다. “처음부터 시작할 겁니다. 다시는 바둑처럼 실패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밝혀야 할 불빛이 있다면 책임질 겁니다. 내게 허락된 불빛이 있다면요…” 주인공 장그래가 인생의 전부였던 바둑 프로기사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을 때 각오를 다지는  말이다. 이 다짐처럼 장그래는 2년 간의 계약기간 동안 영업 3팀의 일원으로 자신만의 불빛을 밝혔다. 그의 불빛은 다른 불빛들과 함께 거대한 도시의 야경을 책임졌다.
   당신의 선배 또는 친구처럼 평범한 주인공이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결말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작가는 결국 정직원이 되지 못한 장그래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사회를 그려낸다. 또 억지스러운 희망과 교훈을 담아내려고 현실을 무조건 밝게 미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합상사에서 고군분투하는 2년 동안 장그래는 자신을 넘어섰고, 사람을 얻었으며 그들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장그래의 불빛은 결국 꺼지지 않았고, 여전히 완전한삶을 향하는 것이다.
   당신의 불빛이 어떤 종류이던, 어느 밝기이던 상관없다. 당신만의 불빛으로 이 도시의 야경에 수놓아보지 않겠는가?

                                                          
박세윤 수습기자
pdbs990@cn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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